주일설교노트

세계관 이야기(4) 대가를 치르는 사랑 | 골로새서 1:15-23 | 주일설교 | 문대원 목사

kwangs 2025. 6. 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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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은 세상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

그 거대한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창조와 타락 구속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이 세상은 인간의 죄로 타락했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의도적인 반역이고 배신이다.

인간의 죄는 창조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대신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인간 타락 직후에, 창 3:15)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 뱀의 후손은 사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복하고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다.

원복음/원시복음 (Protoevangelium)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가장 처음 선포된 순간 (창 3:15)

성경은 인간의 죄에관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책이다.

인간은 실패하여도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셨다.

C. S. 루이스 (C. S. Lewis)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그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뛰어넘는 것이다.

1. 깨어진 형상, 온전한 형상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이 모든사람에게 임하게 되었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올림픽이나 국가대표 선수가 이기면 우리는 한국이 이겼다고 말하듯 아담은 인류전체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이 인류 전체에 적용되었다.

불순종, 이기심은 인류 전체의 공통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있다

편하다고 아무말이나 생각나는대로 하게 되면 상처가 될 수 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타락한 본성을 갖게 되었다.

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천사와 같아지려다가 오히려 짐승과 같아진다."

인간과 동물은 전혀 다른 존재이다.

인간은 양심이 있고 동물은 양심이 없다

인간에게는 도덕의식과 양심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은 인간을 죽이게 된다.

복수하기 위해, 보험금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것은 죄로 인해 완전히 깨어지고 타락한 모습

본래 인간이 나타내야 했던 하나님의 형상을 완벽하게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다

(골로새서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을 본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난폭한 심판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우리중 어느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초대교회 이단 마르시온(Marcion)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예수님께서 사랑이 많으신 것 처럼 하나님께서도 사랑이 많으시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는 것 처럼 예수님도 죄를 미워한다.

예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성품은 동일하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과 함께 이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를 헬라어로 직역하면 그를 향하여라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만물의 존재목적이 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향하여 존재한다.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찾기를 원한다 그 목적을 찾지 못하면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모든 만물은 예수님을 향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허무할 뿐이다.

존재의 목적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할때 인생의 의미를 말할 수 있다.

모든 만물이 그분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서를 쓴 사도바울은 2천년전 사람이다.

이사람이 특별한 것 때문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에 큰 의미로 다가온다.

2. 반역한 인간을 향한 사랑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는 즉시 죽었어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심판을 유예하셨고, 가죽옷을 입혔다

고대사회에서 옷은 신분과 정체성을 나타낸다.

집을 나갔다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 → 정체성 회복

아담과 하와가 비록 범죄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 그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구약의 다양한 제사의 핵심은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다.

재물의 피는 잠시 덮을 뿐이지만 십자가의 피는 우리 죄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다고 말씀하신다

평화에 대해 낭만주의 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동화와 같은 이야기다

진정한 평화는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공의의 회복이다.

우리나라에 여전히 전쟁의 위협이 남아있다.

공의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의가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정한 평화를 말할 수 없다.

하나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공의가 회복되어야 진정한 회복이 있다

우리 스스로 이 공의를 회복할 수 없다.

인간은 죄의 문제를 회복할 도덕적인 능력이 없다.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누군가 치뤄야 한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C. S. 루이스 (C. S. Lewis) "선한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는 없었다. 하지만 반역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대가를 치르셨다."

이 문장은 성경의 핵심을 잘 담고 있다.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다.

그 보혈로 예수님은 화평을 이루셨다.

죄는 분리를 가져온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람간의 분리와 갈등이 일어났다.

하지만 십자가는 화평을 가져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이세상은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맥스 루케이도 (Max Lucado) "관계가 성공하는 것은 죄 있는 쪽이 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죄 없는 쪽에서 긍휼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잘못 없는 쪽에서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그렇게 할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이다.

3. 구원은 탈출이 아니다.

고대근동에서 물질세계를 선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것과 달리 기독교는 배격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고 아름답다

(디모데전서 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물질도 하나님께서, 영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기독교는 물질세계를 선하게 보는 유일한 고등종교이다.

다른 종교는 창조주와 구원자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명확한 창조주의 개념이 없고, 이슬람에서는 구원자 개념이 없다.

모하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받아 쿠란을 적었을 뿐이다.

쿠란의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 구원자의 개념이 아니라 자기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

오직 기독교만 창조주와 구원자가 있으며 동일한 분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독특성

  1. 명확한 창조주와 구원자를 선포
  2. 창조주와 구원자가 동일함을 선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가운데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땅가운데 이뤄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 결혼 vs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결혼

타락한 세상을 탈출하는 것은 진정한 구원이 아니다.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창조세계 전체의 회복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구원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창조 → 타락 → 구속

구속의 범위는 타락의 범위와 일치한다

인간의 죄로 창조세계 전체가 타락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은혜로 타락한 전체가 구속되는 것

그런 의미에서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전도 선교같은 교회 사역이 중요한 만큼

직장과 사업에서의 일도 중요하다

교회도 하나님의 나라이고 이세상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이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세속적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어떤일은 세속적이고 어떤일은 영적이라고 구분하지 말라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인가? 영적인 일인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세속과 영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

Secular (세속적인) vs. Sinful (죄 된)

성경에서 이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의미는

세상의 일을 소흘히 하라는 말이 아니다. 죄를 본받지 말라는 의미이다

오직 죄된 일과 거룩한 일만 있을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타락한 세상에서 빠져나와 천국으로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데서 해방되기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신다.

(로마서 8:19, 21)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과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이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

십자가의 피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셨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 셨다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해야 한다

[골1:15-23]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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