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의 늪에서 탈출하기
2023-02-05 (주일)ㅣ대구동신교회 주일설교ㅣ자기애의 늪에서 탈출하기ㅣ마태복음 23장 5-12절ㅣ문대원 목사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얼마나 의식하십니까
인간의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행복한 것도 중요합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 중에서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힘든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냉수 먹고 이쑤신다라는 속담입니다
맹수를 마셨는데 왜 일을 쑤실까요이 행동은 나를 위한 것일까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일까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실제로는 고기 먹을 형편이 안 되는데 고기 많이 먹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행동이 바로 냉수 먹고이 쑤신다입니다 우리는 실제 내 모습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살아갑니다
적당히 쓰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쓰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주 많이 의식하는 체면 문화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에서 매년 명품 소비 분석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명품이 팔렸는지 분석한 것입니다
2022년을 기준으로 1인당 명품 소비액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한국이었습니다 한국은 1년 전에 비해서 명품 소비가 24% 증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경기가 어렵다는데 그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하면 정확하게 미국이 한국보다 2배 많습니다 한국은 35,000달러이고 미국은 7만 달러입니다
그런데 1인당 명품 소비액을 살펴보면 한국은 325달러이고 미국은 280달러입니다 쉽게 말해서 한 달 수입이 절반인데 명품 소비는 16%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글로벌 보고서인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부를 과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은 45% 중국 사람은 38%가 명품을 과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 중에서는 오직 22%만이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람의 4분의 3은 명품을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고 부러워합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모건 스탠리와 맥킨지 같은 글로벌 기관의 분석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이렇게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회입니다 내가 돈이 많다는 것을 내가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오늘날은 훨씬 더 과시해 관대합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과시와 허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애가 안 하고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르시시즘이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그 사람에서 유래한 그 말입니다 그는 아주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림에 보시는 것처럼 어느 날 그는 호수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사랑한 나머지 계속해서 자기를 쳐다보다가 그만 물에 빠져서 익사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헬라어 나르키소스를 영어로 하면 나르시 소스가 되고요 그래서
자기애가 지나친 사람을 가리켜서 나르시시즘에 빠졌다라고 말합니다
나르시스 시즌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VIP 대접을 받기 원합니다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이 있기 때문에 거만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나르시즘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교묘하게 숨기면서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아주 나이스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주 강력한 자기애가 있습니다 자기가 드러나는 방법은 두 가지 채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과시와 허영입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내가 얼마나 대단하고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학식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종교적인 열심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과시하고 과장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1. 인정받고 싶은 마음
(1) 보이려고 하는 행동
자신의 특별함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은 이것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경건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그룹이고요 예수님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과 함께 나오는 그룹이 있습니다
사두개인이라는 그룹이 함께 나왔는데이 사두교인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그 로마의 통치라는 그 현실에 부합했고 그 결과 종교 권력을 잡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그 사내 드린 공의회를 장악했고요 예루살렘 제사장직을 또한 장악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바리새인들은 로마에 대해서 비판적이었고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돌아가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모든 계명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로 노력하고 헌신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말 자체가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요즘으로 따지면요 누구보다 기도 많이 하고 누구보다 말씀 열심히 보는 사람입니다 매일 길거리에 나가서 노방전도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선교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봐도 모범적인 신자가 있다면 바로 바리새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5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을 길게 하고 여기서 경모는요 성경 구절을 기록한 양피질을 넣은 작은 상자입니다 출애굽기 1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월절 규례를 적어서 미간이나 손에 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력 13장 9절에 보니까 이것으로 내 손의 기호와 내 미간의 표를 삼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사진으로 우리가 보는 것처럼 격문을 만들어서 미간에 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은이 경문을 고정하는 가족들을 넓게 크게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멀리 있어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경문 띠를 넓게 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아셨을까요 모르셨을까요 당연히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만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떠한 동기로이 행동을 하는지까지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이렇게 행동한다 여러분 체면 때문에 우리가 하는 행동이 모두 다 나쁜 행동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 중직으로서 몸이 너무 피곤하지만 억지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절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만 앞서는 것보다 직접 행동을 하는 것이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서 마치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2)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외식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외식하는 자 하면 별로 와닿지 않습니다
이것을 쉽게 표현하면 위선적인 사람입니다 외식한다는 말이 다른 말로 하면 위선적이다라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위선적인 사람이 계신가요 겉으로는 착한 척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의 분노가 가득하지만 겉으로만 상냥하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보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위선적인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으신가요
우리 중에서 위선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 함부로 하게 하는 그런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한결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위선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바깥에서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님들 만날 때는 아 집사님 안녕하세요 하하호호 이렇게 화나게 웃으면서 집에 가서는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아이들한테 다그실 때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모습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했던 사람들은 바로 외식하는 자 위선적인 자였습니다
이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휘퍼 크리테스트라는 단어인데 그 당시에 영국 배우를 가르치는 말이었습니다 연극 배우는요 당연히 이제 그 사람들에게 과장되고 계산된 행동을 하는 영국 배우입니다 여러분 그 앞으로 성경에서 외식하는 자라는 단어가 나오면 연극 배우를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그들은 실제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꾸며지고 계산된 행동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요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이 나옵니다 낙엽을 연기하는 그 배우를 보면 너무나도 그 실감나게 배우로 연기를 하기 때문에 너무나 기분이 나빠서 한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악역을 연극하는 그 배우가 실제로 나쁜 경우가 아니겠죠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배우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 그 연기를 한 것입니다 이것을 헷갈려서 그 배우가 지나갈 때 아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악역 연기를 너무 잘했다고 실감나게 했다고 칭찬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아주 전문적인 배우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척 고상한 척했지만 실제 모습은 그와 달랐습니다 그들이 가는 모든 행동은 철저하게 꾸며지고 계산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행동을 보시고 어떤 기분이 드셨을까요 철저하게 꾸며진 그들의 기도가 예수님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을까요 바리새인의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담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아멘
위선적인 태도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오늘은 자기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다시 말해서 천국의 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이 땅에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원했고 실제로 그것을 받았으니까 천국에는 아무런 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위선적인 사람 다시 말해 외식하는 사람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동합니다 기도를 하던 선행을 하던 무슨 말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될까요 잠언 29장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아멘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립니다 올무에 걸린다는 것은요 덫에 빠지고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더 채 빠지면 자유를 잃어버리고 그 즐거운 이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덫을 놓은 것이 사람이면 그 사람의 지배를 받고 덫을 놓은 것이 사탄이면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안전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6절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단체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당시에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에 따라 자리가 정해졌다고 합니다 테이블이 크게 u자형 테이블인데 제일 가운데 자리가 상석이었는데 마리새인들은 그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당에서 예배드릴 때에도 회당 가운데에는 모세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가장 존경받고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 그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가 율법을 강론했는데 바리새인들이 그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뿐만 아니라 그들은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랍비는 문자적으로 나의 대한 사람 나의 위대한 선생이란 뜻입니다 유대 전통에서 공인된 율법 교사를 높이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랍비라고 불러주기를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원했고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3)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욕구
여러분은 바리새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십니까 안 되십니까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이 마음이 이해가 되십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도 그러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백화점에 갈 때 1층에 발렛파킹을 하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지하 5층에 가서 일반 주차를 하기 원하십니까 할 수만 있다면 백화점 1층에 발렛파킹 하고 싶죠 나도 VIP 고객이 되어서 그런 것을 받고 싶습니다
발렛파킹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백화점 골드 레벨이 되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1년에 3천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지금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자기 타이틀을 불러주기를 원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사장님이라고 불러주길 원하고
학교에 계신 분들은 박사님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합니다
제가 유학했던 보스턴은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어서 박사들이 많았습니다 한인교회 성도의 절반 가까이가 했습니다
그럼이 성도님들이 교회에서 집사님 권사님 하는 것이 아니라 박사님 박사님 하는 거예요
김 박사님이 박사님 서로서로 왜냐면 그 박사가 더 권위 있기 때문에 서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이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것일까요
왜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해지고 싶은 그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심리학자들은 마법적 사고 매지컬 씽킹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것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우리 내면 안에 있는 그 공허함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것에 감추기 위해서 엄청난 왜곡과 환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환상 안에서는 내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멋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냥 훌륭하다는 칭찬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반드시 누구누구보다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낫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의 심리상담가 샌디 허치 키스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오만하고 우월한 태도는 나르시시스트들의 불완전함이 들통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벽 구실을 한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수치심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을 차단하는 보호 벽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의 오만과 마주칠 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진짜 자부심이 아니요 가치 없는 존재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비이성적이고 뿌리깊은 공포일 뿐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뭐 성공했다고 자녀가 잘됐다고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말 내가 잘났기 때문에 자랑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서 자랑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가치 없는 존재가 될까봐 두려워서 그 두려움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어디 가서 축구 잘한다고 자랑할까요? 이재용 회장이 어디 가서 자기 돈 많다고 자랑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자기 자랑을 많이 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높여줍니다
가끔 방송으로 보면 사람들이 자존감에 대해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자존감이 높다고 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가치 있는 존재인지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프리카 브룬드에서 사역할 때 제가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았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왜 같이 있는 사람인지 부룬디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의 동참하는 것이 제 인생의 가치였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그것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고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명품이 많이 팔린다는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명품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좋은 핸드백 좋은 코트 좋은 자동차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 수입에 비해서 과도하게 소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 목적이 나를 과시하고 나를 자랑하는 것이라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시로는 절대로 나의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지 내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기애가 강하고 과시와 허용이 가득한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그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진리의 빛 가운데로 나아와야 합니다
왜냐면 그분의 빛 가운데 설 때에 내가 정말 어떠한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어떤 빛에 있으라 말씀하자면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볼 수 없고 세상도 볼 수 없고 자기 자신도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영광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셔야지 그때 하나님도 볼 수 있고 세상도 볼 수 있고 자기 자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
고대 사회에서는요 죄수들을 동굴 안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동굴 입구에 횃불을 피었습니다 그러면 동굴 안에 갇힌 죄수가 횃불을 등지고 오셔서 자기 그림자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두움 안에 갇힌 인간의 무지입니다
빛을 등지고 있으면 그림자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빛을 향해서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빛을 바라봐야지 현실도 볼 수 있고 나 자신도 볼 수 있습니다
2. 자기애에서 벗어나려면
기독교 사상가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는다 그것을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
태양이 떠오르면 태양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온 세상도 볼 수 있고 나 자신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그 성경의 진리로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시편의 이와 동일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시편 36편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빛 진리의 빛 되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빛 안에 거할 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좋은 면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나의 연약한 면도 볼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것은 나의 좋은 면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는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까지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다 볼 수 있어야지 그 용기가 있어야지 올바른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왜곡된 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내 모습이 아니라 과장된 내 모습 혹은 내가 되고 싶은 그 모습이 마치 나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 사이에 말다툼을 할 때 아내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기 남편과 친구 남편을 비교하면서 말하는 거죠 아 친구 남편은 이렇게 자상하고 아이들한테 잘해주는데 당신은 그게 뭐냐고 다그칩니다
그러면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 그래 맞아 난 너무너무 부족한 남편이야라고 말할까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남편을 생각해서 그와 자신을 비교합니다
내가 도박을 했나 내가 바람을 피웠나 아내를 때리기를 했나 하면서 내가 얼마나 좋은 남편인지 자랑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순결하심이 모든 것이 상상 속에 이야기가 아니라 내 영혼 안에서 실존적으로 체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이전에 거룩하신 그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만났습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고 이사야는 성전환을 가득한 그 여호와의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그때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깨닫게 됩니다
가장 환하고 가장 밝은 그 빛 가운데 설 때에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 나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아래 설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 이후에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용납 완전한 용납을 경험하게 됩니다
과시와 허용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입니다
실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철저하게 가식적인 행동을 합니다 온갖 좋은 말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런 사람을 만나 보신 적이 없습니까
분명히 이 사람이 좋은 말 하고 있는데 저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무슨 마음으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위선적인 사람들 연극 배우라고 비판하신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최대한 나를 아름답게 경건하게 꾸미고 가장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아 왜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지 왜 가식적으로 자기를 꾸밀까요 두렵기 때문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다가 사람들이 실망해서 나를 거절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고 가식적인 말과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이 두려움이 사라질까요 완전한 용납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면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다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를 용납받고 사랑받으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기쁜 소식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그 용납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용납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 안에 이것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성경은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고 아무것도 잘한 일이 없을 그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셨다 용납하셨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용납인 줄로 믿습니다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 많은 그 나의 모습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셨습니다
우주의 왕으로부터 이렇게 놀라운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굳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 계시된 것이 바로 십자가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식이 전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는데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주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주는 메시지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야지 너는 같이 있는 인생이야 돈 많이 벌고 성공해야지 너는 가치 있는 인생이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세상에 주는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이것이 왜 거짓말인지 증명하는 것 너무나 쉽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성공해야지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자녀가 실패해도 사랑하십니까?
당연히 실패해도 사랑합니다
저는 제 딸이 태어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 있는 병원에서 태어났는데 분만실에 저도 함께 들어가서 저희 딸이 태어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갓 태어나서 울고 있는 그 아기를 보면서 제가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지켜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 갓난아기가 저를 위해서 무엇을 했을까요
그 아이가 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죠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아이를 평생 동안 사랑하기로 다짐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타락하고 악한 인간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하물며 가장 온전하시고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 그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대항했던 그 죄인이 어떤 순간에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가 스바냐 선지자가 고백한 진리이기도 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여러분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심정이 느껴지십니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서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이 사랑을 받으면 우리 마음에 안정감이 생기고 자유가 생깁니다 어떤 자유일까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유입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자유입니다 내 인생의 가치가 다른 사람의 인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우리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존내 만에 키가 크네만해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겸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집착합니다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면서 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저 사람보다 더 훌륭한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고 자기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좋고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황홀하기 때문에 주님의 그 영광을 바라보느라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정과 평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아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 것처럼 아 주님이이 사람도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제일 어려운 일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성공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이 일은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애가 강하고 과시와 허용이 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이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위선적으로 살아갈 필요 없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완전한 용납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거절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의 왕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정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