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폭설교노트

2023-03-03 (금)ㅣ대구동신교회 금요기도폭풍집회 설교ㅣ창세기 45:5-8ㅣ선교,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ㅣ박주용 목사

kwangs 2023. 3. 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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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agM58Q5Pg8A 

 

여러분들은 꿈을 자주 꾸시는 편이십니까

어떤 분들은 이제 꿈을 이렇게 자주 많이 꾸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꿈을 잘 안 꾸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떤 편이세요 여러분들은 꿈을 자주 꾸는 편이신가요 이렇게 물어보면 꼭 이렇게 조용히 혼잣말로 하시잖아요 물어보는 너는 어떠니 이렇게 하시잖아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선교사를 서운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선교사로 서운했는데 그리 그때 이후로부터 저희 모든 기도와 제가 또 물질을 번다던가 아니면 계획을 짠다거나 항상 그게 다 선교와 이렇게 연관이 됐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저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저는 어떤 것을 먹든지 모든 것을 다 소화시킵니다.

 기상천의 음식들을 제가 지금 설교 시간에 2시간만 좀 다 얘기해 드릴 수 있는데 제가 중국의 꼬이는 이런 데가 있어요 계림 산수 계림의 산수가 갑천아 이런 그 계림인데 그 계림에 공산당원 분이랑 제가 좀 이렇게 관계가 있어서 그분이 이제 저를 한번 이제 식사를 대접해 준다고 해가지고 산속으로 이렇게 같이 갔는데 산소를 너무너무 깊이 들어가길래 전 아 얘가 이분이 내가 나의 정체를 알고 이제 넘기려고 가시는구나 했는데 딱 들어갔는데 이렇게 오두막집이 하나 해서 들어갔는데 이만한 솥단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팔팔 끓는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물건 문인가 해서 들어갔는데 음식들이 이렇게 샤브샤브로 해 먹는 엄청난 식당이었어요 그래서 음식들을 뭔지는 이렇게 저도 그때 긴장을 하고 있어서 먹으면서 가시가 너무 많더라 도대체 이게 뭐냐 이게 너무 맛있는데이 고기가 뭐냐라고 했을 때 그분이 딱 한마디 했습니다.

 뱀을 샤브샤브로 먹는 그런 것도 넣습니다.

 털어 넣는데 다 소화가 됐어요 선물은 전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있든지간에 그냥 뭐 그런 감당하고 이렇게 잘 지내요 마지막 세 번째가 중요한데요 마지막 세 번째는 등과 땅이 붙으면 그냥 잡니다.

 그래서 뭐 이렇게 어떤 분들이 이렇게 천장이 똑같아야지 잠이 오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하다가 잘까 하면 그냥 자요 가끔 성도님들 중에 우리 제가 이제 선교지를 계속해서 방문을 하잖아요 선교사님들 뵈러 그러면은 목사님 그렇게 왔다 갔다 하셔 가지고 시차 적응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물어보신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은 저 시차장 때문에 고생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직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고 싶으면 이런 나의 이렇게 대답을 했었습니다.

 제가 중국의 첫 번째로 단기 선교를 갔었을 텐데 그때 한 20시간 정도 이렇게 버스로 이동하던 때였어요 그때만 해도 한 20 25년 이렇게 전이었으니까 중국의 지방이 그렇게 많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지금 많이 발달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기차를 확인 애매해서 퍼스트로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침대 버스가 없어서 그냥 버스를 탔어요이 말을 우리가 그냥 버스는 다 버스지 이렇게 생각하시겠는데 중국은 침대 버스로 이동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버스는 여러분 지금 앉아 계신 자리는 다 쿠션이 있잖아요 그쵸 중국의 버스에는 그 당시만 해도 쿠션이 없었습니다.

 그냥 쇠뭉치에 앉아서 20시간을 덜컹덜컹 거리면서 가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 가지고 자야겠다 싶어서 버스 통로에이 통로 입장이에요 통로에 신무지를 깔고 놓았습니다.

 그리고 달콩달콩 거리는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자드 자자하고 그냥 잤어요 제가 잠깐에 보니까 사람들이 밝고 지나가거나 느낌이 났는데 그래서 전 어디서든지 잘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잡으세요 하면 제 잘 수 있습니다.

 설계를 해야 되니까 이렇게 잠을 잘 자고 꿈을 거의 안 꿉니다.

 딱 자고 일어나서 몇 시에 일어나야지라고 생각하면 그때 딱 일어나지 중간에 어떻게 꿈을 꾸거나 그러진 않아요 근데 저희 집 아이들은 꿈을 잘 꾸는 편입니다.

 저희 집 둘째가 말괄량인데요이 아이가 둘째 딸입니다.

 아들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막 놀다가 잘 때쯤 되면은 이제 빠이빠이 하고 다 이제 저의 품을 떠나가요 그래서 왜 이렇게 왜 아빠랑 같이 앉아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들이 꼭 얘기하는게 있습니다.

 아빠랑 자면 악몽을 꿔 이렇게 얘기를 해요 제가 막몽 꾸라고 이렇게 막 꼬락꼬락꼬락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닌데 잘 놀다가 아빠랑 자면 악몽을 꾼다고 이렇게 중요한 거는이 아이들이 악몽을 꾸고 싶어서 꾸는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빠랑 잘 놀다가 더 이상 놀기 싫은데 핑계대게 없어서 악몽 꾼다는게 아니라 진짜 아이들이 저랑 잘하고 일어나면 꼭 그냥 악몽을 꿨단 얘기를 많이 했어요 자기가 원해서 꿈을 꾸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나는 이런 꿈을 꿔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큰 복을 내리시는게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꿈 내가 꿀을 수 없고 우리가 갖고는 모든 그 꿈들은 사실은 내가 어느 순간 꿈이 아니라 그냥 꾸게 되는 꿈들이에요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45장 본문은 요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요셉은 창세기 후반부에 이제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인데요

이 요셉의 스토리를 좀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이 요셉을 통해서 어떻게 역사하셨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한번 좀 보려고 합니다.

이 요셉을 우리가 흔히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꿈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우리는 꿈의 사람 요셉이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요셉처럼 꿈을 꿔라 너도 좀 꿈이 있어야지 요새 봐라 요셉은 이렇게 꿈의 사람이야 요셉은 평생 이제 꿈꾸며 살았어라고 이렇게 많이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칭한 이유가 아마 이 본문 때문인데 이렇게 되는데 우리 화면 보시면서 37 9절 말씀 한번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 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아멘 어린 시절의 요셉은 꿈을 꿉니다.

 먼저는 곡식단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을 향해서 절하는 꿈을 거예요 그리고이어서 또 두 번째로 꾼 꿈이 바로 앞에 있는이 본문입니다.

 다시 꿈을 꿨는데 이번에는 11별 뿐만 아니라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요셉을 어려서부터 이 꿈을 품고 안 하는 이거 왜 총리가 되어야지 그래 이게 나의 부르심이야 이러면서 

그 꿈을 붙잡고 살아왔다라고 우리는 쉽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까 제가 방금 전에 이제 길게 얘기했던 것처럼

자기가 꿈을 꾸고 싶어서 꿈을 꾸는 분들은 한 명도 없을 거예요

난 이런 꿈을 꾸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꿈을 꾸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은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의 스토리 가운데 계속해서 나온 꿈의 이야기 중에 바로도 자기가 어려서 꿈을 꾼게 아니고 모두가 다 붐은 자기가 원해서 꾼게 아니라 그냥 꾸게 된 것입니다.

 자기 신이 애굽 총리가 되어야지 이렇게 꿈꾸는게 아니라 그냥 요셉은 가만히 있었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그런 꿈을 두 번을 연속으로 그렇게 꾸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원해서 껐던 꿈이 아니었어요 요셉이 난 애굽 총리가 되고 싶은데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다가 꿈이 꺼졌다 드디어 드디어 꺼졌다 그날이 왔다 해가지고 이제는 내가 외국으로 가야 되는데 어떻게 가야 되지 그러면 형들의 미움을 한번 사볼까 하고 형들 이거 옷 괜찮은 건데 없지 이러면서 막 놀리고 이런게 아니었어요 이제 막 그렇게 놀려 가지고 애굽으로 팔려 갈 텐데 이제 조금 좋은 집에 팔려가서 내가 이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되면은 바로 이제 인사 승진을 고속 승진을 하면서 애굽의 총리가 돼야지 이런 생각도 안 했고 그 집에서 망해가지고 감옥에 떨어졌을 때도 조금 돌아가긴 하는데 그래도 여기 감옥에서 어떻게 자라게 되면은 꼰대로 애굽에 총리가 되겠지라고 했던 구절이 성경 가운데 한 구절도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데 우린 너무나도 쉽게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오해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오해합니까

그것을 우리가 요셉의 고난이 아니라

요셉의 영광에만 쉽게 주목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팔려간 나이가 일반적으로 17살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은 고2 내지 고3 정도의 나이로 이렇게 추측을 합니다.

  17살에 꽃다운 시절에 애굽의 총리가 될 때가 30살이니까 13년 동안의 연단과 고난의 과정이 있었어요 인생의 황금기와 같은 20대 인생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그 청춘의 그 20대를 통째로 감옥 아니면 노예 살인을 했던 것을 우리는 주께 쉽게 이렇게 읽고 넘어갑니다.

 요셉은 그 고난과 연단의 과정을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나한테 우연찮게 꾸게 된 그 꿈 두 개만 붙잡고 그 13년의 세월을 버텨냈던 것이 결단코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꿈이 아니라 다른 것을 붙잡았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내 의도랑 전혀 상관없이 꾸게 된 꿈이 아니라 꿈을 의도적으로 주셨던 하나님을 요셉은 붙잡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고난과 연단의 과정 속에서도 요셉은 그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버텨냈던 것입니다.

 요셉은 그냥 우연치 않게 꿨던 꿈이 아니라 그 꿈을 의도적으로 주신 하나님을 붙잡고 그 고난과 연단의 과정을 이겨냈었습니다.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이 무엇입니까

이 꿈은 단순히 이제 조금 있으면 어려워질 텐데 니네 가족 내가 구원해 줄게이 정도 수준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애굽의 책 광대 그 당시 최강대국 애굽에 가서 국무총리가 되어서 거기를 좀 네가 좀 잘 다스려 봐라

그 정도 수준의 꿈도 아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셨던이 꿈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이 꿈은 요셉을 통해 천하 만민을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심을 열방에 보여주시는 열방에 드러나게 하신 꿈이었습니다.

 그래서이 꿈은 단순히 요셉 한 명 요셉의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창조 이래로 역사와 시간을 관통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고 계신 꿈이 바로 요셉의 꿈이었습니다.

 곧이어 7년의 흉년이 이제 닥칠 건데 풍년의 그 7년 이후에 세상 사람들이 능히 살아남지 못할 7년간의 혹독한 흉년이 다칠 건데 그 흉년의 기간 동안에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을 받는 그것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천하 열국이 구원받는 그 그림을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보여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에게 의도적으로 꿈을 주셨고 그 꿈을 위해 준비되도록 요셉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사실이 꿈은 제일 먼저 요셉에게 주셨던 꿈이 아니라 창세기 12장 가운데 아브라함 가운데 가장 먼저 주셨던 꿈입니다.

 창세기 12 3절 보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할 거야 그리고 너를 저주한 자에게 나는 저주할 거야 내가 너한테 똑같이 해줄게 우리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마무리 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 복 받아 너 하나님 백성 됐으니까 너는 복 받고 너는 잘 돼 그리고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네가 축복하는 사람 내가 축복해 줄게 너 미워하는 사람 네가 저주하면 내가 같이 저주해 줄게라고 이야기하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땅의 모든 끝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는 그 일을 내가 너와 함께 이루고 싶어라는 하나님의 꿈을 아브라함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꿈 요셉의 선조였던 아브라함이 주신이 꿈을 사람들은 다 잊고 심지어 아브라함과 그의 손자 야곱도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잊지 아니하시고이 꿈을 동일하게 다시 요셉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국군대로 요셉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요셉의 인생을 하나하나 하나하나 이렇게 빚어 가셨어요 요셉의 꿈은 단순히 한 개인의 꿈이 아니라 역사와 신앙과 시간을 관통하여 흐르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꿈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요셉은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주셨을 때 요셉은 뭐지 하고 끝내는게 아니라 그 꿈을 붙잡았어요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 그 꿈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흉년의 기간 동안 천하 만민이 모든 족속들이 요셉 앞에 나아와 경배하며 그 요셉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 바로의 꿈을 풀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그때부터라도 하나님을 믿고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요셉에게 그 꿈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흉악 흉악한 흉년 가운데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안정적인 땅으로 이동해 와서 한 민족과 한 백성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 준비 시켜 주셨어요 요셉의 후손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요셉에게 수령이 동일하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꿈이 무엇입니까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 모든 민족과 열방이 다 내거다 이스라엘 리들만 내게 아니라 야곱 지파 야곱 야곱의 자손들 너희만 내 자손이 아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는데 그 중에 너희들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요셉을 통해서이 꿈을 주었고이 꿈을 이루어 가야 할 민족이니 너희들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 내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요셉에게 백성 요셉의 후손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께서이 땅을 백성들에게이 꿈을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아브라함과 요셉에게 주셨던 그 꿈 그 꿈을 믿음으로 좀 품고 내 백성 내 소유가 되어서이 만민들을 구원할이 꿈에 너희들이 좀 동참하면 좋겠다 이렇게 요셉의 후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이루어 가십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셨던 분도 하나님 그렇죠 요셉이 꿈을 자기가 꾸고 싶은게 아니잖아요 요셉에게 꿈을 주셨던 분도 하나님이시고 요셉에게 꿈을 이루도록 이끌어 가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이 과정을 다 깨닫고 자신에게 꿈을 주사 천하 만민을 구원할이 일을 이루어 가신 하나님을 깨닫고 본문 5절 말씀처럼 고백합니다.

 우리 5절 말씀은 우리 다 함께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먼저 보내셨나이다 아멘 요셉이 지금 어떻게 고백합니까 하나님이 당신들보다 나를 먼저 이곳에 보내셨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애굽에 오게 된 것은 미디안 상인들이 다른 나라에 팔지 않고 애굽에 팔아서 오게 된 것도 아니고 형들이 나를 팔아먹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 지금이 땅에 나를 보내셨기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라고 요셉은 고백하는 거예요 특별히 제일 마지막에 보면은 잠깐만 그 앞으로 넘어가 주세요 5절 말씀에 제일 마지막 보면은 나를 당신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특별히 보내셨나이다라고 이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샬라의는 구약성경에 있는 보내다라는 뜻인데 이것이 신약성경의 헬라어로 번역이 되면서 아포스톨러스라고 번역이 됩니다.

 

이 아포스툴루스는

보냄을 받은 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갖고 보냄을 받는 그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께 예수 그리스도의 의해서 주님의 보내심을 따라 보내심 받으며 보내셨나이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 청년부의 이름이 아포슬이잖아요 보냄 받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고 그 꿈대로 이루어 가시기 위해 보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다 깨달은 다음에 자신의 입술로 고백하는 겁니다.

 

 나는 꿈을 꾼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고 그 꿈대로 하나님의 내 삶을 빚어 가셨고 빚어간 그 산 그대로 하나님은 지금 내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며 나를 보내신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께서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께서 성령이 땅이 보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내셨다고 요셉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게 되는 그 하나님의 꿈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온 것은 형들의 시기심이나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꿈 그 하나님의 꿈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특별히 왜 보내셨으면 받았습니까

앞에 파란색 글씨로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요셉을 하나님의 뜻대로 먼저 그렇게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살이라는 고난도 허락하셨고 거기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라면서 그 철저한 무너짐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요셉은 자신을 보내셨다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 하나님이 꿈을 주셨고 그 꿈을 한 해 뜻대로 깨닫게 하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고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고 고백합니다.

 13년 동안에 고난과 아픔과 눈물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씨름하는 그 씨름의 과정을 통해서 나왔던 요셉의 결론은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라는 것입니다.

 나를 이곳에 보내신 있는 여러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요셉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꿈 요셉의 후손 너를 통해 모든 족속이 얻게 될까 그 꿈을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시는 걸 통해서 이루셨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천하 만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보냈다라고 고백합니다.

 당신들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에요 이제 수백 년 우리 후가 지난 다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출애굽 하여서 십계명을 붙잡고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라는 그 백성들 길게는 그것이 사실 패야끼에 예수 그리스도의이 땅에 직접 오셔서 친히 이루신 영적 이스라엘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은 바로 우리들 우리 후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요셉을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은이 일련의 과정을 모든 것을 다 깨닫고 하나님께 이것이 원망이 아니라 이것이 절망이 아니라 이것이 어떤 슬픔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하나님 주신 꿈 그것을 내가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어 가셨다고 그 막판에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이 요셉의 고백의 마무리해서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내신이는 당신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이 땅으로 보내신이는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내가 원치 않게 꿈을 꾸었고 그 꿈으로 인해서 이렇게 고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분들이 나를 시위해서 형들이 나를 시기해서이 땅에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보내셨다 그 꿈을 주신 의도 하나님이시여 이루실 이도 하나님이시여 그 뭔가 역사하는 시도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바로 요셉의 고백입니다.

 

 요셉은 결단 그 스스로 그 스스로 이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몸부림치지 않았습니다.

 주신 이도 하나님 보내신 이러한 하나님 이루실 일도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요셉은 그의 평생 가운데 따르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꿈이 아닙니다.

 오히려 요셉의 인생을 관통한 키워드는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의 순종하고 그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고 그 뜻에 몸부림치며 순종하면 나아갔던 형통의 삶이 요셉의 삶에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인생이 키워드는 꿈이 아니라 형통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던 그 어두운 터널 그 17살의 그 절망 앞에서 요셉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고백해요 내 인생 가운데 무너지고 쓰러지고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이 꿈을 주시니가 나 함께 하신다면 나는 환경과 관계없이 형통할 수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차리찬 감옥에 오래 가셨을 때 동일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고백합니다.

이를 갈며 인생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감옥에 갇혔을 때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형통을 회복합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통이란 무엇입니까 형통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만사형통이란 말을 많이 하고 그렇게 기도지만 많이 하잖아요 그 형통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형통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 눈앞에 아무런 어려움이 있고 아무런 고난과 아픔이 없이 그냥 그냥 쭉쭉쭉쭉 잘 살아가는 인생이 형통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한 형통은 조금은 다릅니다.

 성경이 말한 형통은 눈앞에 어려움이 없는 삶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 인물 그 누구도 그 어떤 사람도 그 눈앞에 어려움이 없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형통은 문제가 없는 상황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과 그 모든 문제를 함께 돌파하며 하나님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삶 내 인생 가운데 내가 품는 꿈 내가 꾸는 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꿈이 아니라 인생의 어려움과 낙심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꿈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삶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돌파하고 낙심되면이 딸지라도 뚫고지도 하고 늘푸른 눈물 가운데이 딸지라도 이겨내가는 그 삶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것이라면 내 앞에 눈물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그 눈앞에 있는 아픔과 눈물을 이겨 나가는 그 삶 하나님이신 그 꿈을 향해 달려난 그 삶을 성경은 형통한 삶이라고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스한 아버지의 품에 있건 노예살이를 하건 감옥에 갇혀 있건간에 요셉에게 중요했던 것은 눈앞에 상황과 조건이 아니라 함께 하신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신 그 주님이 지금 진짜 나와 함께 하고 있느냐라는 거였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아버지의 품이라 할지라도 천방지축이었지만 그것이 눈앞에 어려움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꿈의 헌신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는 요셉은 문제 앞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꿈을 품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환경 속에 있던지간에 그 어려움 가운데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돌파해가는 인생을 우리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그 어떤 어려움과 낙심과 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무너지는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은 이렇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꿈이 있다 이것을 깨닫고 그 꿈을 붙잡고 하나님과 함께 그 어려움들을 뚫고 지나가는 형통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 회심하여서 제법 잘하고 있다 이렇게 싶으면 되게 그 사람은 만사형통을 기대한다 질병이나 돈 문제나 새로운 유혹이 닥쳐오면 그는 실망한다 그의 생각에 이전에 악하게 살 때는 그래 악하게 살 때는 내가 문제가 있으면 뭐 내 죄지 이렇게 생각한다 이거죠 그냥 자신있게 회개하느라 그런 것이 필요하겠다 생각됐는데 하지만 지금 신앙생활 잘하고 있을 때는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죠 근데 그 답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 덕분에 그는 평생 꿈도 꾸지 못할만큼 용기와 인내와 사랑이 아주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그런 상황이 다 불필요해 보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를 엄청난 존재로 엄청난 생명 사역자로 엄청난 주의 백성으로 엄청난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 로 우리를 빚으시려 하기 때문에 그 고난은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 됩니다.

이 요셉의 스토리가 바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아 형들이 나한테 여기 지금 보낸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그 고백의 스토리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버지 야곱의 품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꿈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그냥 채색 옷을 입고 형들을 놀리는 그런 수준의 신앙 밖에는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꿈대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 그 꿈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빚어 나가실 때에 고난과 인생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요셉을 빚어 나가실 때 요셉은 비로소 자신에게 주신 그 꿈 자기를 통해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든 그 하나님의 꿈을 깨닫고 그 꿈의 사람으로 결국에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요셉은 결코 단순한 꿈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품고 보내심을 받은 형통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이렇게 하나님의 꿈을 품고 보내심을 받아 형통의 삶을 살아가는 그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심하다 성경의 모든 신의 시대마다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오셨었습니다.

이 요셉의 스토리에게가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꼭 70년 전에 70여년 전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우리 교회가 지난 50년 동안 걸어온 선교의 역사와 그 결이 참 비슷하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이 성경 50절을 준비하면서 요셉에 대해서 계속 묵상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올해 제가 광고 시간 이야기한 것처럼 선교 우리 대구동신교회 우리 선교회의 50전 이런 차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걸어왔던 선교 50주년입니다.

 50주년은 그냥 뭐 선교에서 뭐 알아서 하겠지 이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몇몇 안 되는 그 하나님의 꿈을 깨닫게 하시고 그 꿈들을 부르시고 그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고난과 연단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흑금대로 살아가도록 부르신 특별한 부르심이 50년 전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심을 따라 1973년도에 세계 선교를 시작했었습니다.

 제가 선교회를 담당하는 목회자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거는 전 말이 안 된다라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이거는 저 가나안 땅에 야곱의 집에 11번째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를 꿈꾸는데 이것보다도 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어요 1973년도에 우리 한국의 1인당 총 국민 국민 총소득 주의 나이라고 하는데이 국민총소득이 1973년대 얼마였는지 혹시 아십니까 잘 모르는 걸 이렇게 질문해요 저도 몰랐어요 제가 통계청에 이렇게 들어가 봤습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그때 74년대 우리나라가 1인당 430달러였어요 이게 높은 건지 낮은건지 좀 애매하잖아요 그 당시에 달러도 있으니까요 다른 나라들을 한번 좀 비교해 보면 좋겠는데요 얼마 전에 이제 연초였던 것 같은데 왜 그 마약하는 목사님으로 이렇게 막 수리남 그 있잖아요 그 수리남이 1978년도에 1인당 국민 총소득이 770불이었습니다.

 우리 거의 1.5배 정도 되잖아요 저 아프리카에는 쉐이셸 이런 나라 한 630불 짐바브에 530불 잠비아가 450불로 우리보다 20불이나 낮아요 지금 생각했을 때 저 좀 죄송하지만 조금 이렇게 개발이 덜 됐다고 생각하는 그 국가들보다도 우리나라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국가를 보더라도 말레이시아가 570불로 우리 바로 위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얘기해서 우리는 어떤 해외에서 뭘 한다 이런 걸 꿈꿀 수가 없었던 때가 1973년도였습니다.

 특별히 처음 73년도에는 중동전쟁으로 인해서 1차 오일쇼크가 터졌던 해입니다.

 그의 배럴당 3달러였던 유가가 배럴당 12달러로 올랐어요 지금 배럴당 100불이었던 유가가 배열당 400 500불 이렇게 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과 충격이 한국 경제에 미쳤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강화됐던 국가의 기름으로 인해서 큰 위기와 혼란을 맞이했던 해가 1973년도였습니다.

 이해에 원강생심 말 그대로 원강생심이죠 어찌 그리 마음 품을 수 있느냐고 손가락 받을 수 있는 딱 그런 모습이었어요 네가 애굽에 네가 우리 곡식단과 해와 달과 별이 절을 한다고 이런 지금 분위기가 지금 똑같이 우리 교회가 1973년도에 선교를 시작했을 때 바로 그러한 분위기였습니다.

 그것도 서울도 아니고 대구였습니다.

 동인동의 한 구석에서 작은 교회가 1973년 그 경제적 위기 가운데 세계 어떤 나라도 주목하지 않았던 나라의 수도도 아니고 지방에서 세계 선교를 시작하겠다고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꿈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아니라 우리가 꿨던 꿈입니까 아니 이것은 우리가 감히 꿈꿀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인 줄 믿습니다.

 요셉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요셉에게 나는 너를 사용할 거야 너를 통해 천안 안민을 구원할 거야 그 꿈을 주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50년 전에 우리 교회에게 정말 경제적으로도 말도 안 되고 오일 축구로 경제적인 위기도 있었지만 그리고 정말 작고 작은 공동체였지만 하나님은 우리 공동체에 내가 너를 사용할거다라고 요셉에게 꿈을 주신 것처럼 우리 공동 체에 그렇게 꿈을 주신 줄 믿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다 손가락질했어요

정신 나간 놈이 저거 아빠가 좀 해주니까 저렇게 한다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손가락질 했을 겁니다.

 지금 달러가 부족한데 뭐 세계선 말 같지도 않아요 선교가 뭐야 이런 얘기들을 제가 이제 옛날 목사님 장로님 얘기를 보면 그 당시에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은 어떤 분을 보낼까요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게 아니었어요 선교가 뭐예요가 제일 많은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선교란 개념 자체가 없었던 1973년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셨고 그 꿈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레슬링 뉴비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교회는 선교의 일꾼이기보다 선교의 장소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고 권능을 수행하고 새 시대의 징조를 창조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은밀히 역사하여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다 이것이 이야기하면 선교는 교회가 하는 건데 교회가 잘나서 하는게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게 바로 선교다이 이야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1950년 전 아무것도 없었고 헐벗고 굶주렸던 우리에게 너희들 우리 교회에게 동시 하나님은 꿈이 선교라는 꿈을 주셔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 선교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 결과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겁니다.

 그 공동체는 역사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언제나 참 의미와 목표를 증언해야 합니다.

 바울의 따르면 언제나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짐으로써 예수의 부활의 생명에 누구라도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교회의 선교는 그냥 잘난 사람 몇 명 뭐 소수하는게 아니라 모든 공동체가 다 함께 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50년의 꿈을 주셨어요 해라 세계 선교를 풀어봐라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을 때 세계 선교를 품었습니다.

 지난 50여년 여정 또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그것을 부모가 품어왔었고 지금은 우리가 그것을 함께 품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열방의 복음을 중요한 그 꿈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셨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요셉이 그냥 꿈을 주신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주셨던 그 꿈을 50년 지난 우리의 지금에도 우리는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품고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꿈이었기에 그 어떤 고난과 아픔이 있었어도 우린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이전에는 88올림픽 이전에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입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달러를 보내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을 때 해외에 송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때 당회의 결의를 우리는 인편을 통해서 선교사님들에게 선교비를 보내면서이 선교를 계속해서 우리는 어떠한 환경과 어떤 조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입금을 향해 달려왔었습니다.

 imf란 그 혹독한 경제적인 한파 속에서도 우리가 먹을 것은 줄일지언정 선교사님들에게 보내는 것은 줄이지 않고 계속해서이 선교를 감당했습니다.

 2008년 이맘보다서부터 리만 브라더스부터 시작했던 세계의 전 세계 구명위기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이 꿈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 거리에 있는 것처럼 코로나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일상이 멈추고 우리의 모든 일상이 다 무너져 버린 것 같은 그때에도 우리는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선교지에는 영혼들이 코로나를 안에서 먹을 것이 없을까 봐 코로나 구제 사역을 진행했었습니다.

 

전쟁이 터져서 사람들이 인도할 때 우리는 나의 헌금을 모아서 보내면 우리의 경제도 어려웠지만 계속해서 세계의 선교를 향한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위기와 어려움과 아픔과 낙심이 있다 할지라도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이 선교란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꾼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대구동신이라는이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이 꿈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 선교는 우리의 꿈이 아니라 우리 대구동신교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꿈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내신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그의 인생에서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이 세계 선교를 감당하며 열방 품고 기도하고 꿈꾸고 함께 헌신하고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열심 우리의 기도 우리의 소명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방을 품으라고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그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이 꿈을 함께 달려가도록 우리의 일상 가운데 역사하시고 여러분의 기도하는 응답하시고 우리가이 선교라는 한 꿈으로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이라 우리는 확신합니다.

이 세계선교 하나님께 세계 선교를 위해 우리에게 선교에 속한 몇 명 아니면 당회에 계신 장로님들 몇 명 이렇게 소수만 뿜어야 되는 꿈이 아닙니다.

 특별히 청년들 청소년들이 있는데 어른들만 꾸며야 된 품어야 되는 그 꿈도 결단코 아닙니다.

이 꿈은 모든 세대 성도가 함께 꾸어야 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꿈

 나이는 결단코 중요한게 아닙니다.

 본문의 요셉은 17살의 나이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17살에 팔려가서 20대를 지내다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어요 사랑하는 청년 또 청소년 여러분 결단코 우리의 나이로 말미암아 꿈을 제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주신 꿈이 있습니다.

 청년들이 주신 꿈 청소년들에게 주신 그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나는 나이가 어리니까 뭐 나는 아직 뭐 하니까 그렇게 핑계치 마시고 부모님의 꿈 다른 사람의 꿈 뭐 저 목사님의 꿈 저 집사님의 꿈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 50년 전에 우리 대구동신이라는 공동체 자체를 하나님 부르시면서이 땅에 젊은이 나에게도 주신이 선교의 꿈을 우리가 함께 품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110살의 나이로 삶을 살며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신 그 꿈을 품고 살아갔습니다.

 창세기 50 20절 보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당신들을 나를 헤아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자 오늘 아 하나님이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려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 고백합니다.

 110세 때 죽기 전에 요셉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주셨던 그 꿈을 잊지 않고 국군대로 헌신하며 살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작년 세대 여러분 특별히 선교 옵션을 이끌어온 산 증인과 같은 우리 실버셋을 성도 여러분 밤길에 운전하기 어려워서 유튜브를 많이 예배드릴 수가 있을 텐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꿈은 몇 명에게 주신 꿈이 아닙니다.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이 꿈은 하나님이 역사와 전통을 꿰뚫으면서 저 아브라함 시대 때부터 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때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시면서이 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속해서 일을 해가고 계신 줄 믿습니다.

이 일 안에이 일 가운데 우리가 저 집사님 열심히 하시겠지 저 권사님 열심히 하시겠지 뭐 우리 집사람 열심히 하니까 이게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이 꿈을 향해 달려 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 선교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방관자로 계시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경꾼이 되지 않고 방관자가 되지 않고이 꿈에 주인공이 되셔야 됩니다.

이 부르심에 참여하는 주인공이 되셔야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기쁨이 넘칠 겁니다.

 알 수 없는 기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내 인생과 내 환경은 어렵고 아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갔더니 하나님의 꿈을 품고 살아갔더니 이렇게 기쁘고 감사하구나 이러한 기쁨이 나에게 넘치는구나이 고백이 우리 안에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는 모든 세대가 참여하는 기쁨의 축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이 50주년 어떻게 됩니까 모든 세대가 참여하는 기쁨의 축제가 바로 선교 50주년입니다.

50주년 가운데이 선교 가운데 여러분들이 구경꾼으로 그냥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그냥 방관자로 계시지 말고 오셔서 기도하시고 오셔서 함께 하시고 오셔서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이 부르심 우리한 그 꿈 가운데 우리는 한 마음과 한 몸 한 몸과 한마음을 품고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 시간 이게 길게 제가 다 소개해 드릴 수는 없는데

50주년 사역들을 대략적으로 한번 소개를 해드리면 3 29일부터 33일까지는 선교사님들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 대회가 이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3 31일부터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하는 선교 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3 31일에는 우리의 목사님 오셔서 50점 기념특별 기도 폭풍집회를 다 나오셔서 현지 옷을 입고 여기에서 이제 딱 서서 가지고 이제 특성 하실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 우리 선교사님 여러분 다 매칭 선거 사람들 계시잖아요 그 선생님 어떻게 생겼지 궁금하면은 그날 오셔서 보시면 됩니다.

 아 저분이구나 내가 저분이라서 기도하겠구나 우리 중구를 매칭 때문에 저분에게 기도하시고 그렇게 함께 하시면 됩니다.

 4 1일은 그 전체에서 우리 특별히 교회 본관 주차장에서 선교사님들과 만나는 선교 부스가 있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실 수 여러 주제를 선교사님들이 직접 이야기해 드리는 선교 선택특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가기까지의 어떤 그러한 프로그램 그런 것들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더 전이라는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금요일 날 선교사님들이 딱 옷을 입고 특성 하시잖아요 그럼 그 옷을 다 이렇게 우리 청년부 선교국에서 다 걷어서 딱 세팅을 오시면 여러분 거기에 보면 인생 네컷 기계가 있을 거예요 모셔서 선교사님들 옷도 입어보시고 나랑 어울리는 어딘가 이렇게 보시면서 거기 단기 선교도 한번 가보시고 이렇게 열방 사진과 열방의 물건을 파는 열방 상점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선교 음식 축제에 대해서 우리 외국인 예배부 교회 안에 외부인 예배부 있는 거 여러분 다 아시죠 사실 잘 접할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 때 오시면 그 외국인 예법에 대해서 로컬 현지 맛집 이렇게 컨셉으로 해서 여러분들 베트남 예배에서는 여러분들이 좋아하신 베트남 음식 중국 예배부에서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중국 음식 좋아하실 줄 믿습니다.

 또 러시아 예배에서 러시아 아동권에 사는 또 이런 예배입니다.

 다 맛있는 음식들로만 한국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만 준비하는 음식을 체험하시면 그 체험하신 모든 비용은 다 mk들을 위한 장학 기금으로 그렇게 우리가 사용할 예정입니다.

 함께 오셔서 대도 참여해 주시고 mk들을 위해서 함께 이렇게 마음도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5시부터는 여기에 다시 다 모여서 우리 50명의 50주년을 기념하게 50명의 다음 세대들과 함께 하는 예배 선교 축제가 5시부터 이곳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4 2일에는 우리 모두 다 선교에 동참을 한번 해봅시다라는 마음으로 3월 마지막 주 3월 넷째 주에 여러분들에게 전도지를 나눠 드릴 거예요 잘 들으셔야 됩니다.

 전도지를 나눠 드릴 거예요 그럼 그 전도진을 언제 나눠줘야 할까요 4 2일 주일에 오실 때는 여러분들이 자가용으로 오시는게 아니라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교회에 오시면서 전도지를 택시기 운전기사 아저씨 버스 운전 버스에서 만나 오신 분 아니면 걸으면서 만난 분에게 전화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예배를 드리러 오실 겁니다.

 그리고 2부에 마치면 우리 예배 예배 드리신 분들 3부 예배 4부여들이 조금 일찍 오신 분들과 함께 본관 측정해서 모두가 함께 모여서 우리는 생명사약자 이러면서 같이 이렇게 기념촬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여러분 함께 기대해 주시고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선교에서 또 담임목사님이 이렇게 예배 시간에 광고하고 또 추가적으로 이렇게 여러분께 자세하게 또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대회 가운데 우리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사가 잘 되고 못되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그 가운데 우리가 지금까지는 조금 적극적으로 했다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 소극적으로 했다면 선교사님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 우리가 정말이 천하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꿈에 내가 어떻게 동참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이 시간 옆에 계신 성도님들과 이렇게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선교 대회 때 만나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선교 전략가였던 데이빗 바렛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현대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경쟁 중복 그리고 무관심이다 세계 선교를 전략가들 중에 몇몇 전략가들이 있는데 그 중에 그 중에 한 명 손꼽히는 전략가 중의 한 명인 바렛은이 시대의 선교가 제일 안 되는 원인이 무엇이냐 이렇게 사람들이 물어봤을 때 경쟁 그리고 중복 그리고 무관심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했어요 여러분들이 우리가 선교회 무관심한 거 그것이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대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는 그 일에 정말 어떻게 보면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보의 기도 책갈피 이렇게 나눠 드렸잖아요 그렇게 여러분들이 매칭을 선교사님들 계속해서 기도하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갑자기 당황하시고 그러는데 저도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들 뭐 이렇게 까먹었다 잊어버렸다 그러면 저기 로비에 있으니까 가져가셔도 되고 또 없으면 여러분 또 여러분 주문을마다 다 매칭 선교사님들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에서 기도하는 것 또 그분들이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선교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골방에서 열방을 품을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실 줄 믿습니다.

이 선교 50주년 표어는 사명을 넘어 생명입니다.

 사명을 넘어 생명으로 가는 그것은 사명을 어떻게 보면 무거운 짐 어떻게 보면 어려운 짐이 될 수 있어요 고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 우리가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기쁨과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이 선교를 감당할 때 고난이 있고 눈물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무너짐이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주님께 순종하고 끝까지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통해 우리는 사명을 넘어서 생명으로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난 12월 선교 주일 때 담임목사님께서 하셨을 때 CT 스터드라는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담임선 목사님이 이것을 인용하셨었거든요 근데이 고백이 제가 평상시에도 가슴에 남아있는 고백이라서 정말 가슴 진하게 남아있는 고백이 있는데 한번 좀 화면에 띄워 주시고요 한번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갑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한 그 일은 끝까지 영원히 남겨 주셨겠다라고 그렇게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명을 넘어서 생명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패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들의 저주와 손가락질로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천하 만민을 향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에게 잘한 일도 있고 아쉬운 일도 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의 취해서도 안 되고 실패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무관심하게 일을 바라봐도 안 되고 또 성장에 취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한번뿐인 인생 속히 나는 인생 가운데 고난이 눈을 앞을 가리고 상황과 조건이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한 그 인생은 그 일들은 영원한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기억함으로 끝까지 주님을 위해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우린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허준이 교수에 대해 혹시 여러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화면 속에 저분인데요 저분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이면서 작년에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을 불리는 필지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검정고시를 거쳐서 서울대 입학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서 6년 동안 대학을 다니셨고 한 계기를 한 계기로 이제 수학에 대한 꿈을 품고 이제 여러 가지 어려운 추측들 풀면서 난제자리 11개나 풀어낸 분입니다.

이 허준이 교수님이 작년에 작년 작년인지 1학기 졸업식 때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서 축사로 남겼던 그 말인데이 축사가 매우 인상이 깊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이 오래된 질문을 여러분 메일이 대답해 줄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니까 커서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 앞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잖아요

이어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지적이 참으로 뼈아프고 실제적인 지적입니다.

 혹시 우리의 인생이 취업 준비 요가 결혼 준비 육아 교육승진인데 노후준비를 거쳐서 어디 그럴듯한 1인실에 누워서 삶을 마감하는 방향성을 우리가 가고 있다면 우린 그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그 길에 돌이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 우리의 인생을 뛰어넘고 우리의 역사를 뛰어넘고 모든 인류와 역사를 관통하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꿈 우리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그 하나의 품에 우리는 동참하는 인생이 되셔야 합니다.

 요셉은 그렇게 그의 인생 가운데 고난과 품 있었지만 그 꿈을 깨닫고 그 꿈대로 살아갔던 삶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찬가지로 우리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는 꿈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이 다음 세대 자녀들 뭐 다른 사람들에게 야 너는 꿈을 꿔라 이렇게 얘기하는게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들에게도 여러분 꿈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전 세계 열방 가운데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날을 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날을 위해서 제가 녹슬을 없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쓰임 받고 쓰임 받고 쓰임 받아서 달아 없어지는 인생을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 꿈은 저에게 변신 꿈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인 줄 믿습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그렇게 어떠한 어려움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보기에이 길을 달려온 줄 믿습니다.

 작은 성전 공간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그 어떤 위기와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었던 그 꿈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함께 품어서 다가올 반세기를 향해 나아가야 할 꿈인 줄 믿습니다.

이 꿈은 우리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꿈입니다.

 하나님 주신 그 꿈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 내 꿈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품고 그 꿈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넘어서 그 꿈대로 살아가는 삶 사명을 넘어 생명으로 모든 세대가 참여하는 기쁨의 선교에 함께 동참하여서 우리의 눈이 주님의 영광을 보는 그 일을 위해 헌신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ㅣ창세기 45:5-8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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