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7 (금)ㅣ대구동신교회 금요기도폭풍집회 설교ㅣ사도행전 4:23-31ㅣ복음을 위한 권세 있는 기도ㅣ문대원 목사
생명사역은 예수님께 접속되어서 그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누리고 우리가 누리는 그 생명력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
생명사역의 핵심은 생각의 틀을 바꾸고 또 성령의 불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우리가 변화되면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되며 생명사역에 열매는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우리가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대구동신교회는 교육과 훈련에 특화된 교회이지만 그와 동시에 전도와 선교에도 헌신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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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동신교회는 교육과 훈련에 특화된 교회이지만 그와 동시에 전도와 선교에도 헌신된 교회입니다.
3월 마지막 주간에 우리 교회 선교회 50주년 특별 행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동신교회 하면 예전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아마 전국에 다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교를 빼고선 우리가 대구동신교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있다가 동신교회로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 역시 우리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한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부른데서 열심히 선교하는 것도 귀한 일이겠지만 동신교회처럼 선교적인 교회에 와서 섬기면서이 교회를 통해서 수많은 성도님들이 선교의 동참하게 되고 헌신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제가 순종하고자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또 동신교회에서 섬기면서 지난 2년간 참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우리 교회가 너무나도 안정적으로 또한 역동적으로 생명사역을 감당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당회가 하나 되어 있고요 온 교회가 하나 되어서 너무나도 행복하게 우리가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변에서 대구 경북지역에서 새롭게 후임 목사를 뽑는 리더십 전환을 준비하는 교회들이 우리 교회 많이 찾아와서 문의를 한다고 합니다.
뭐 지원서 양식은 어땠는지 어떻게 공고를 내고 어떻게 인터뷰를 했는지 여러가지로 우리 장로님들께 문의를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발행한 월간지가 있는데 교회의 성장이라는 그 월간지에서 리더십 계승에 대한 특집 기사를 이제 냈는데 우리 교회의 사례를 자세하게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순장님들께는 이번 주 순장교육 때 그 내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우리 매주 자부예배 후에 순정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큰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순장님들께는 특별하게 설교의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로 말씀해 드리고 설교에서 말하지 않았던 부분도 따로 말씀을 드리고 또 예를 들어서 이번 봄 특새의 주제가 무엇인지도 순장님들께 먼저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이런 것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사역훈련을 잘 받으시고 순장으로 섬기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이고요 우리 교회 dna의 선교가 있습니다.
제가 부임한지 얼마 안 됐지만 우리 교회의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셔서 선교적인 지평도 계속해서 넓히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어쩌면 더 빠르게 일하고 계셔서 제 마음에 약간의 그런 두려운 마음도 조금 있습니다.
천천히 이제 스텝을 밟아가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를 통해서 하시고 싶은 일이 아주 많으신 것 같습니다.
로잔 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일하게 하시고 팀 켈러 목사님의 국제사역인 복음과 도시에서도 함께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GMF라고 한국 해외 선교에 법인 이사로도 섬기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파송 선교사님들이 많이 계신 단체가 GMP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의 상위 기간이 GMF입니다.
GMF의 법인이사가 전국에 10명이 있는데 부족한 저를 이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 회의에가 오늘의 교회 지구촌교회처럼 정말로 한국에서 가장 열심히 선교하는 그런 교회들 안에 대구동신교회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귀하게 사용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생명사역에 열매로 그 결과를 우리가 가장 힘세할 것이 있다면 바로 전도와 선교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생명의 대해서 사실은 제가 다루고 싶은 내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포스트모더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는이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변증해야 할 것인가 종교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회의적인이 세대에는 우리가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여러가지 이제 전도에 대해서 다룰 주제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은 한 가지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전도와 기도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가장 영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전도가 영적인 사역이라 하는 말은요 성령의 역사 없이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전도는 교회의 어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전도는 성도가 꼭 해야만 하는 어떤 의무 같은 것도 아니고요 1년에 전도 몇 명 해야 한다 이런 부담감이나 당위성을 가지고 접근하면 전도가 너무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1년에 몇 명 전도 했는지 우리가 막 서로 경쟁하는 것도 사실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영혼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쟁할 때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경쟁해야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힘을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경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은 우리 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 비교하거나 단순 경쟁하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전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것도 그냥 기도가 아니라요 권세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시도록 성령께서 사탄의 방해된 막으시도록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말씀의 근거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는 권세 있는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말씀을 중심으로
복음을 위한 권세 있는 기도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장 본문의 앞장인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에서 이제 기적을 행합니다. 치유를 행합니다.
남에서부터 이제 걷지 못하던 자를 향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했더니 그 사람이 정말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 순간에 베드로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날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5천 명이었습니다.
이어진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 붙잡혀 갔습니다.
재판을 받는 것이죠 예수님을 대적했던 그 사내들인 공에는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다가 그들을 처벌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충만하여 아주 지혜롭게 담대하게 답변을 했고 공예가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어떤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공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위협하면서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8절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사실이 말씀은 사도행전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교회가 박해를 받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오순절 그 설교를 통해서 3천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면서 처음으로 교회가 이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치유를 행했고 그 이외에 이어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5천 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두 번의 설교를 통해서 8천 명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흥분되었을까요?
우리는 정말 몇 년 동안 노력을 해도 8명 전도할까 말까인데 베드로는 설교를 딱 두 번 해서 8천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 지금이야말로 정말 부흥회 때이고 지금의 말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도 흥분했을 것이고 와 이제 더 많이 전도해야겠다 선교여야겠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교회가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내들인 공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의 붙잡고 견고하고 위협했습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아라라고 그들을 위협했습니다.
교회가 처음으로 고난과 박해를 받게 된 순간이었습니다이 사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사실이 하나가 있습니다.
세상은 처음부터 교회를 미워하고 대적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반대하고 세상의 교회를 대적한 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미 오래전에 이것을 아셨고 박해가 있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8절 19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아멘
여러분이 말씀을 잘 기억하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이 세상에 속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계십니까 아니면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고 계십니까 만약에 여러분께서 믿지 않는이 친구들로부터이 사회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면 혹시 내가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해서 나에게로 가져왔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며 놀라지 말아라 왜냐하면 세상이 나를 먼저 미워했기 때문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은 예수님과 세상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CS 루이스는 그래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주의 중립지대란 없다 한치의 공간 단 1초의 시간까지도 하나님이 권리를 주장하시고 사탄은 그 주장에 맞선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이 말은 너무 이분법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 좀 잘 되고 성공할 수도 있고 동시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정말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것입니다.
왜냐하면이 세상은 예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이 사실을 또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한 구절 더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예수님 말씀대로 내가 경건하게 거룩하게 살고자 하면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는 물리적으로 박해를 받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조롱을 받지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야 아직도 교회를 다니냐라고 조롱을 합니다.
그런 조롱을 받을 때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저는 그런 조롱을 받을 때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조롱을 받을 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고난과 문제 앞에 설 때에 그때에 우리의 진짜 모습을 우리가 그때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평소에는요 우리의 진짜 모습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내 신앙이 얼마나 견고한지 우리가 다 알 길이 없습니다.
다 멀쩡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문제 앞에 설 때에 큰 고난을 만날 때에 그때 진짜 나의 모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정말로 믿고 있는지 내가 정말로 예수님의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지 고난 앞에 설 때에 문제 앞에 설 때에 그때 알 수 있습니다.
존 맥스웰은
모든 문제는 우리 자신을 보여준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한 기독 언론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한국 교회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을 했죠 아 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저는 이제 막 담임목회를 시작한 사람인데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답변을 드리겠습니까? 라고 답변을 드렸더니 아 그래도 한마디만 해달라고 해서
제가 이 존 맥스웰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 자신을 보여준다
코로나는 한국 교회가 어떠한지 그 모습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도 그렇고 부정적인 의미로도 그렇습니다.
한국 교회의 실체가 어떤 모습인지 그 민낯을 코로나가 다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있었는지 우리가 자랑하던 그 많은 것들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코로나가 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가 힘을 많이 잃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의지하던 그 힘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도 있고 긍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에서는 자신감을 잃게 되고 어떤 희망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자신을 의지할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정말로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위기는 위장된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 그 말은 우리 자신의 모든 문제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 문제를 잘 다루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문제를 우리가 회피하거나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위기는 기회란 말이 맞습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분명히 위기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우리가 실망도 하고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잘 다루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그 문제를 회피하거나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고난과 박해라는 그 문제를 만났을 때에 그들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난과 밖에 놀라지 않았고요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떻게 해서 고난과 박해라는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고난과 밖에 가운데 기도했습니다.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23절 24절
사도들이 노임에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대 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에 만물을 지으시오 아멘
이 말씀에서 대주제라는 말이 영어로 소울엔 뜻입니다. 그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 주권자를 뜻합니다.
주대교회가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서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누구신가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대 주제 다시 말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 주권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고백한 그런 신앙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이 고백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것 중요합니다.
기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그 하나님의 어떠한 분이시고 그분에게 어떤 권능이 있는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기도하면서도 확신이 없고 염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요 하나님이 정말 누구인지 알지 않는 사람들은요 기도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 중에서 기도하지 않는 분들 계시죠 목사님 중에서도 기도하는 기도하지 않는 목사 있을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 중에서도 기도하지 않는 선교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분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 도와주고 구제도 많이 합니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힘씁니다.
그분들의 어떤 헌신과 봉사를 보면요 정말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권능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이신을 가진 사람들은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성경을 대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노숙자들을 위해서 봉사에 하는 그 봉사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미국이 최애 강대국이지만 노숙자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해서 교회들에서 노숙자들을 교회로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같이 음악회를 하고 하는 그런 행사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인 봉사를 하는 교회들이 대부분 열심히 하는 교회들 감리교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 감리교회는 한국 감리교회와 다르게 아주 신학이 아주 자유주의 신학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따라가는 그 교회의 특징이 한 가지가 있는데 예배와 기도의 열심히 참여하지 않습니다.
주일 예배에 가면은 교회 당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봉사를 하면 또 열심히 노숙자들을 위해서 열심히 사회봉사를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아이러니합니다.
아니 어떻게 노숙자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은혜가 되는데 어떻게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을 수가 있을까 참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 그 하나님은요 살아계셔서 지금도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생각에 틀은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인본주의 사상을 가지고 그냥 교회에 와서 선한 행 행동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내가 기도하는 그 대상이 누구인가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가 믿기 때문에 그분 앞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물쭈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함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믿는 사람들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절대적인 권능으로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무리 우리를 공격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공격과 박해는 언제든지 과거 교회사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난 가운데에서도 교회가 살아남고 부흥하여서 지금이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이고 인간의 약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강함을 드러내시는 증거인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로잔 대회를 준비하면서 준비위원장 대신 그 유기성 목사님과 자주 만나서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국교회가 자신감이 넘치고 정말 기세가 등등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공간이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지나가면서 한국교회가 힘이 많이 빠지고 약해졌습니다.
대신에 간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힘을 의지할 수 없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날 때가 아닌가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약할 그때에 하나님께서 강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을 의지할 때에는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가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할 때에 주님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 목회자들이 모이면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 교회들마다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는 사역들이 아주 많아졌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요 다른 교회가 잘 연합하지 않았습니다.
각 교회별로 작자가 자기 힘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개교회가 힘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서 서로 연합하고 선교를 위해서 서로 협력하는 일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변화인 것입니다.
나 혼자서 하지 않고 함께 연합하고 함께 협력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20세기 모선교회 두 흐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가시적 교회는 우리 눈에 보이는 교회입니다.
동신교회처럼 잘 조직된 교회가 가시적 교회입니다.
비가시적 교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모든 그 사람들이 모인 그 우주적인 공동체가 비가시적 교회입니다.
비 가시적 교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조직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건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가 아시죠 교회는 실제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교회를 통해서 온 만물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 전도대가 다른 교회에 와서 함께 연합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가 우리 교회에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동신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변에 있는 여러 어려운 교회들을 열심히 돌아보고 섬기는 것 이것도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너무나도 긍휼의 마음이 많으셔서 주변에 어려운 교회들이 열심히 우리가 돕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회를 하다 보면 정말 정말 많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다른 교회를 돕고 섬길 것인지에 대해서 의논하느라고 그 시간을 사용하게 됩니다.
다른 교회를 돕느라고 선교사님들의 섬기기 위해서 정작 우리 장로님들은 정말 오래된 가구 오래된 에어컨을 당회실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나중에 시간 되시면 당회실에 한번 와보십시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 우리에게서 제일 오래된 에어컨은 다 당시에 와 있습니다.
당시 자체가 참신관 지하실에 있습니다.
당회실이 일반적으로는 아주 교회에 좋은 위치에 있는데 우리 교회는 지하실에 당의실을 만들고 검소하게 우리 장로님들이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재정을 검소하게 아껴서 다른 교회들을 섬기고 또 선교를 위해서 힘쓰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생각하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그 우주적인 교회를 기억하면서 연약한 교회들을 돕고 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가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를 기뻐하시고 더욱더 큰 은혜와 사명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기도를 드린 다음에는 그 다음으로 해야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서 영적 전쟁을 위한 기도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전도는 영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안에 수많은 영적인 공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을 위해서 하는 그 기도가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29절 30절 말씀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증거하기 위해서는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고 세상이 우리를 박해해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도 가운데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나도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그 담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기는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내가 용기가 있어서 담력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가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전도의 설명을 감당할 때 우리가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도 또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기사와 표적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사 원더걸스라는 말은 인간의 입장에서 놀랍고 신비로운 그런 일들을 뜻합니다.
그에 반해서 표적 쌓이는요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뜻합니다.
그것이 병 고침일 수도 있고 아니면 놀라운 기적적인 기도 응답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정말 표현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우리가 표적이라고 하는데 그 표적의 결과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21~22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40여 세나 되었더라 아멘
성전 앞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그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표적이 나타났는데 그 결과 그 목적은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표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결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이 바로 그 표적의 목적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래서 표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경우에 복음을 전할 때 그 표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과정에서 믿지 않는 자들를 향해서 주님께서 표적을 나타내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시대에도 그런 표정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마시고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가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가 영적인 사역이라 하는 것에 의미인 것입니다.
전도는 영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실제로 살아계신 것처럼 사탄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사탄의 존재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할 때마다 사탄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사탄은 우리를 방해하고 낙담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제가 동신교회에서 사역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가 벌써 여러 번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잘 되고 무언가 좋은 일이 있으려고 할 때마다 우리를 흔들려고 하는 사탄의 공격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작년부터 1월 신년 기폭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코로나를 지나가면서 주일 예배는 회복이 금방 됐습니다.
요리교회 성도님들이 워낙 훈련을 많이 받으시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서 주일 예배는 금방 회복이 되었는데 문제는 금요 기도회였습니다.
우리가 이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일주일에 한 번만 교회 가면 되지 뭐 두 번이나 교회를 할 것인가 하는 그런 건성이 있었죠
그래서 주일 예배는 금방 회복되었지만 금요 기도회는 잘 회복되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금요 기폭이야말로 우리 교회 영적인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시금석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에게가 정말 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는지 주님을 향한 그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는지 보려면 그 기준이 금요 기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아 작년에 이제 처음으로 신년 기폭이라는 걸 시작했죠 우리가 모실 수 있는 정말 최고의 강사분을 모시고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준비했습니다.
그때 한번 유기성 목사님께 처음 오셔서 많은 이분들께서 큰 은혜와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작년에 총 4번의 신년 기폭이 있었는데 세 번째 집회를 마치고 제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서 제 마음이 너무나도 뜨거웠습니다.
우리가 세 번째 그 집회 때 성령 충만을 위해 함께 기도했었는데요 그때 정말로 많은 분들께서 뜨겁게 기도하시면서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정말로 간절하게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제 마음 가운데 아 정말로 뭔가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겠구나 하는 그런 확신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집회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설교가 제 차례였습니다.
제가 아주 오랫동안 제가 기도하면서 열심히 정말 설교를 준비하고 아 정말 뜨겁게 기도하면서 이번에 신전기폭을 마무리해야겠다라고 다짐을 했는데 바로 그때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역자 사무실에서 코로나 감염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오미쿠론 바이러스 변이 바이러스 처음 나올 때였는데 교역자실에서 감염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회에서 집단 감염이 나오면 막 언론의 기사가 나오던 그 시기였습니다.
그때 제가 당시 후임목사였기 때문에 권성수 목사님과 함께 의논하고 기도하면서 일주일간 그 모든 예배를 온라인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 마지막 10년 기법 그 집회를 우리가 온라인으로 드렸습니다.
그때 제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세 번째 집회까지 너무 뜨겁게 이어져서 저는 마지막 집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는데 그 마지막 집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집회를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왜 왜 이런 일이 왔을까 아 내가 무슨 잘못했을까 정말 이런 고민하던 중에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사탄의 영적인 공격일 수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시 기도의 부를 일으키고 다시 하나님의 간절하게 구하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니까 사탄이 방해하는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교육자들과 함께 영적 전쟁을 하면서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사실이 자세한 내막을 성도님들께 다 알릴 수가 없으니까 교역자들이 정말 교회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사탄의 공격이 와도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고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이런 공격이 한 번만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가 잘 되려고 할 때마다 아 뭔가 이제 좋은 일이 뭔가 탁 올라가겠구나 싶을 때마다 사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온 가족 축복 기도회하면 우리 온 아이들 함께 놀랍게 기도하잖아요 그 다음에 직후에 사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 제 위임식 직후에 뭔가 교회가 뜨거워질 때에도 사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힘있게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생명사역에 헌신하라고 할 때마다 사탄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여러분들께 미리 말씀드립니다.
앞으로도 이런 공격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런 하려고 할 때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방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느끼시겠지만 요즘 우리 교회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위해서 모일 때마다 기도를 위해서 모일 때마다 교육과 훈련을 할 때마다 아 무언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 순장님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도요 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대와 어떤 소망 같은게 있고요 우리 청년부 리더들 모였을 때에도 아 무슨 일이 정말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열정과 어떤 흥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 이런 소망은 절대로 사람이 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와도 절대로 이렇게 선동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주시고 기대를 주시고 열정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정말 순전한 마음을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를 통해서 놀랍게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가 놀라운만큼 사탄의 방에도 똑같이 놀라울 것입니다.
그의 비례해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의 내부를 공격하겠죠 우리 안에 갈등이 있고 분열이 있게 하겠지요 우리 외부에서 공격하겠죠
우리 교회 비방하고 흔들려고 하는 사람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당연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향해 가면 갈수록 사탄의 방해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절대로 놀라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잘못 안 했는데 우린 정말 주님께 순종하고 있는데 누군가 비난하고 비방할 때 놀랄 필요 없습니다.
우리 신앙적 양심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것으로 기뻐하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부터 13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함을 이상한 일 당하는 같이 이상이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이는 그의 영광임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마음에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험이 다가올 때 고난이 다가올 때 이상하게 여기 필요가 없습니다.
아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공격하는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구나 그것으로 즐거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위해서 뭐라고 하든지 상관에 바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흔들려고 해도 끝까지 주님 안에 거하면 우리는 안전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이 권세 있는 기도를 드린 이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입니다.
빌기를 다음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아멘
기도를 마쳤을 때 모인 곳이 진동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천지가 진동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온산이 크게 진동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박해를 받는 초대교회가 간절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령을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권세 있는 기도 간절한 기도를 기도할 때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성령 충만 전도라는 이 순서는 사도행전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종의 패턴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전도를요 우리가 부담감 어떤 당위성으로 접근하면 참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으로 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성령이 안 계시면 아 전도에 대한 부담만 있는데 실제로 전도를 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2월 달에 미국 에즈버리 대학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 인터넷을 통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미국 목사님들뿐만 아니라 미국에 계신 한인 목사님들께서도 애즈번에 대학에 다녀오기도 하셨습니다.
애즈베리 대학의 부흥이 뭐 진짜 부흥이냐 아니면 가짜 부흥이냐 가지고 논쟁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원래 조직신학자들은 그런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니까는 그분 그 문제는 그분들에게 맡겨 놓으면 됩니다.
하지만이 부흥이 우리에게 주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기에이 세상은 아무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이 세상을 포기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마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성령의 능력을 믿으며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부흥에 대해서요 너무 낭만주의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부흥이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낭만주의적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흥이 임한다고 해서 한국의 모든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고 부흥이 임한다고 해서 나의 개인적인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 아닙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 안에 큰 담대함과 용기가 생기는데 그 결과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그 권능을 우리가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아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라고 우리가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요나단 에드워즈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다섯 가지 기준
-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 둘째 죄를 회개하고 거룩을 사모하게 하는가
- 셋째 성경을 사랑하게 하는가
- 넷째 건전한 교리를 사랑하게 하는가
- 다섯째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가
우리 안에서 성령 하나님께 실제로 역사하실 때에이 다섯 가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높이게 되고 죄를 회개하게 되고 성경을 사랑하고 건전한 교류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이 다섯 가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부흥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갈망하는 마음이 부흥입니다이 세상에서의 성공 돈 명예보다 하나님 그 한 분만을 더욱더 갈망하는 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목회에서의 성공 뭐 교회의 성장 그런 것보다 하나님 그분만을 가장 갈망하는 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로 부흥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우리의 욕심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갈망하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정말 하나님 한 분만을 진정으로 갈망할 때 우리가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하고 싶은 욕심 아 우리 교회가 더 큰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그 욕심 그것까지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물론 그 욕심에 가장 큰 유혹을 받는 사람은 저겠지요
저 부터 그 유혹을 욕심을 내려놓겠습니다.
뭐 목회에서 성공하고 싶은 그 욕심 다 내려놓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주인이 되셔서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 교회가 되도록 주님께서 주님의 뜻에 맞게 우리를 온전히 사용하시도록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어두운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에즈버리 대학에서 평범한이 대학생들이 하나님을 갈망할 때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대구동신교회에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순전한 마음을 하나님을 갈망할 때 동일한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 성령을 체험하면 우리 모두가 신실한 복음의 증인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전도의 전략과 방법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어떻게이 현대 사회에서 전도할지 그때 가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여러분 전도의 전략이 부흥을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부흥을 이끄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시면 그 열정을 가지고 우리가 전도의 전략을 이제 그때 가서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전도의 방법과 전략에 대해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그 GMF 법인 이사회에서 한 가지 아주 흥미로운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어떤 전통적인 선교 훈련 전통적인 선교 동원은 감소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서
전문인 선교 훈련 전문인 선교 동원은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 전통적인 선교 훈련과 동원은 감소하고 있지만 전문인 선교 훈련과 동원은 더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방법으로 전도와 선교의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통적인 방법이 감소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어떠한 방법으로 전도하고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지 우리가 유심히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아 우리 젊은 세대는 봉사도 안 하고 헌신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서울에 그 목요회에서 청년부 회장으로 섬길 때 아 청년들이 교회 봉사 안 한다는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직접 전수조사를 제가 한번 해봤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그 작년 성도 총 숫자와 각 부서에서 봉사하는 그 작년에 작년에 총 숫자를 조사하고 청년부 예배에 참석하는 총 숫자와 각 부서에서 봉사하는 그 청년의 총 숫자를 제가 다 조사했습니다.
그렇게 비율로 따졌을 때에 청년들이 봉사를 많이 할까요? 장년들이 봉사를 많이 할까요? 청년들이 2배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는 왜 청년들이 봉사를 안 한다고 말씀을 하실까요?
전통적인 방법으로 전통적인 인식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이걸 안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자세하게 살펴보니까 청년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각 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기존의 해왔던 그 전통적인 방법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그 전도의 방법이 청년세대 다음 세대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새로운 방법 새로운 세대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면 됩니다. 이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방법 새로운 접근을 우리가 개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왔던 그 방식대로만 전도해야 한다는이 생각만 내려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전도법을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 청년부에서는 두 달에 한번 포유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작년보에서는 1년에 한번 행복 나눔 잔치를 하고 있는데 청년부는 두 달에 한 번씩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죠 불신자 친구를 데려오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예배드리는 이후에 식당에 가서 친구와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교회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청년들에게 아주 효과적이어서 두 달에 한 번 있는이 포유 예배 때 불신자 청년들이 많이 오고 있습니다.
일이 최신자들이 많이 올뿐만 아니라 실제로 교회에 정착하는 그 비율도 아주 높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다음 세대에 맞는 전도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요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있는 것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유연하다는 뜻입니다. 부드럽습니다.
죽은 생명체는 딱딱합니다. 굳어져 있습니다.
생명력을 잃은 사람이나 조직이나 점점 딱딱해지고 굳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생명력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보려면 우리가 얼마나 변화될 수 있고 얼마나 우리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이 생명력은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줄로 믿습니다.
고난과 박해로부터 있던 그 초대교회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기도했을 때 성령은 충만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된 그들이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뜨거운 기도 권세 있는 기도를 통해서 성령 충만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그 용기와 담대함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