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윤리 (4) 실존주의자가 바라본 세상 | 전도서 7:15-22 | 문대원 목사
크리스천의 윤리 (4) 실존주의자가 바라본 세상 | 전도서 7:15-22 | 문대원 목사
삼중시각
규범, 상황, 실존
3가지 모두 고려해야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규범만 강조하면 바싹 마른 율법주의자
상황만 강조하면 변명만 늘어놓는다. 사랑과 율법과 배치된다는 주장
실존은 규범과 상황을 인식하고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주체를 뜻한다
실존은 나 자신을 가리킨다
실존은 나 자신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이다.
실존의 문제는 주관주의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주관주의(subjectivism)는 나의 생각,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주관주의에 빠져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 내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존주의는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관주의 문제
(1) 개인의 경험에는 한계가 있음(영국의 타워브릿지를 경험하지 않고 알게 됨)
(2) 우리의 경험이 항상 본질과 일치하지 않음(지구의 중력을 느끼지 못함)
1. 실존주의의 우울함
잠언은 규범적인 세상을 잘 보여준다.
반면에 전도서는 실존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7: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착한 사람이 고통받고, 나쁜 사람이 형통한 경우가 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타락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깊은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
공포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두려움이다.
불안은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파스칼 우리는 진리를 소망하지만, 우리 안에는 불확실 뿐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지만, 불행과 죽음만을 발견한다
실존주의 철학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전2:22-23]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산것 같은데 내 수고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공허함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의미가 붕괴되면 그 사람 인생 전체가 붕괴된다.
파스칼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밖에 없다.
창조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실존주의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거부했고, 의미의 붕괴가 일어나 우울과 공허를 맞이했다.
실존은 다 나쁜 것인가?
2.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에게 떡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주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현실적인 관점과 이상적인 관점 모두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이 2가지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필요와 실존적인 필요를 기억하고 균현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전7:16-17]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판하고 무시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전도서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어 자기 의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전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난도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이 정말 맞는 말씀이다.
나도 잘못할 수 있고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이다.
자기 의에 빠져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현실주의자 눈에 보이는 상황강조 최악의 상황을 대비
이상주의자 | 감당해야 할 목적 강조 | 최선의 상황을 향해 전진 |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변화될 수 있다. 교회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탁월한 리더가 되기 원하면 현실적인 부분과 이상적인 부분을 갖춰야 하며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
[전7: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해졌다.
목욕한 사람처럼 이미 온 몸이 깨끗해졌지만, 이 세상을 걸어다니며 우리의 발이 더러워졌다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 발을 씻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러면 자비로운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진다. 우리 죄의 문제, 실존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이것이 매주 참회기도를 하는 이유이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아신다
주님께서 매주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 발을 씻어주신다.
이것이 복음중의 복음, 영원한 소망을 주는 것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안에서 인생의 확고한 의미를 붙잡아야 한다
3. 역설과 더불어 사는 삶
절대적인 규범을 부정하면 실존주의자 처럼 우울과 공허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역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순: 두가지가 서로 상충되는 둘다 사실이 될 수 없는 관계
역설: 겉으로 보면 상충되는 것 같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동시에 사실이 될 수 있는 관계
현실과 이상을 살아가기 위해 역설을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내 삶가운데 이뤄지지 않는지 의심이 될때 기억해야 할 전도서 말씀
[전7: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솔로몬이 스스로 지혜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스스로 힘으로 완벽한 지혜자가 없다는 의미
(1) 나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인생의 단한가지 성공의 공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육아의 왕도가 없는 이유는 아이마다 개성과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성공의 공식은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인생의 역설을 이해하고 포용하게 된다.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다 아는척하지 않는다
(2)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실존주의자와 정 반대의 모습
본질주의자, 이상주의자는 영원한 진리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한 유대인들의 기도 나는 태양이 비추지 않는다 해도 태양을 믿습니다 나는 사랑이 주변에 없는 듯 느껴져도 사랑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침묵하신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상황이 절망스러워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다. 광야에서는 지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안내자가 필요하다
[잠3:5-6]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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