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윤리(5) 성적 순결의 중요성 | 고전 6:15-20 | 문대원 목사
인생에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바른 동기 기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목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불안전한 인간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
규범으로 치우치면 율법주의자, 상황이나 실존으로 치우치면 궁극적인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삼중시각을 가져야 한다.
성적순결, 동성애, 경제윤리와 사형제도
하나님의 말씀이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다르다
성적순결은 아주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지만 좀처럼 말하기 힘든 주제이다.
자녀에게 성에 대해 가르친적이 있는가?
자녀는 많은 경우 성적인 문제를 친구나 인터넷에서 배운다
세상이 말하는 성의 의미와 성경의 성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다
세상은 성욕을 식욕과 같이 해결해야 하는 의미, 성적 결합을 단순히 육체적인 결합으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인간과 영혼은 나눌 수 없기에 성적 결합은 영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1. 성적 결합의 의미
부부사이의 성적 결합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은 결혼 관계 안에서 그것을 누리게 하셨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하셨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
임신과 육아는 단순한 고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고귀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결혼이 우선→ 성적 결합 → 생명의 탄생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겠다(?)
주민등록상에 아버지로 명시하지 않으면서 어떤 책임을 다하는 것인가?
아버지로 부터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로서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말할때 동성애를 말하는데 비단 동성애만 아니다
부부사이가 아닌데 성적 결합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긴것이다.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아무 잘못 없는 그 아이들이다.
오직 부부만이 성적 결합을 할 수 있다.
이 질서를 지키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결혼은 계약(contract)이 아니라 언약(covenant)이다.
하나님을 증인으로 맺는 영원한 약속이 언약이다.
언약을 기념하는 예식
구약: 출애굽 사건 → 유월절 절기
신약: 십자가 사건 → 성찬식
부부사이에 결혼언약을 기념하는 예식 → 성적 결합
성욕을 위한 육체적 행위가 아니다. 한몸이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언약의 예식이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한 몸이 되는 것은 단순 육체적 결합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나누는 한 유기체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나눌 수 없다.
성적 결합에는 육체적 의미와 영적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이 된다.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동일한 헬라어 ‘소마’ 한유기체
성관계는 더러운 것도 아니고 죄악도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자 선물이다
다만, 하나님은 결혼관계 안에서 그것을 누리게 하셨다.
아담이 하와를 향해 내 뼈중의 뼈, 살중의 살
2. 육체에 관한 두 가지 관점
(1) 사라지는 것 vs 영원한 것
세상사람들은 몸이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고 믿지만 우리는 육체의 부활을 믿는다.
육체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앞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고전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부활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해보면 몇가지 단서가 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고, 요한은 단번에 알아봤다.
예수님은 부활하실때 이전과 상당히 비슷했을 것이고, 창자국과 못자국이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살아계셨을 때의 모습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우리가 부활한 모습은 살아있을때의 모습과 연속성을 가질 것이다.
기독교는 육체를 선하게 여기는 유일한 고등 종교이다(플라톤)
불교는 육체의 욕망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겼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데모데전서 ]
의인의 육체와 악인의 육체도 부활할 것이며, 지금의 모습과 연속성을 가질 것이다.
성적 순결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음행은 심각한 죄이다.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음행을 저지르는 상대가 거룩한 사람일 수 없다.
음행을 저지르면 내 몸이 더러운 몸이 되어 나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리스트 컷(wrist cut) 증후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를 자해하는 행동
음행이 이런 자해와 마찬가지다. 음행을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죄악이다.
우리 몸이 영원하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2) 나의 것 vs 주의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일정기간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우리는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속량(redemption)
값을 치르고 소유권을 사와 자유를 주는 개념
3.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
진정한 자유
내 맘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
[고전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진정한 자유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죄의 문제, 중독의 문제에 벗어나 유익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다.
스텐포드 에나 램키 중독의 본질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갈등할 것이다.
점점 약화되는 중독은 없다.
경제에서 인플레이션과 비슷하다.
동일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더 큰 자극을 받아야 한다. 그 결과 중독된 사람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죄의 노예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를 예수님이 값을 치르고 사셨는데 중독에 빠져 자유를 잃게 되었다.
중독에 빠진 사람 = 절제를 배우지 못한 사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길 원해서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절제를 배운 사람이다.
창세기, 요셉이 보디발 아내로 부터 성적인 유혹을 받았을 때 요셉이 실수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평생 그 사건으로 발목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절제를 배운 사람이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사람앞에서 떳떳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따.
애나 렘키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쾌락보다 훨씬 더 오래 간다
[고전6:15-20]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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