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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젤가정사역공동체

에젤공동체 2월19일 가정, 은혜를 기억하는 곳 창9:20~29

by kwangs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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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lMENLggdO2Q

 

창세기 9장 20~29절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여러분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기독교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나타내신 그 자체

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계시가 가장 명확하고 자주 보이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서 그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의 사건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노아홍수 에피소드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홍수 이야기는 그야말로 은혜의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겠죠 당시 사람들은 행하는 일들이 다 악할 뿐이었다고 성경은 기록을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가만히 두고 보실 수만은 없으셨어요

그래서 홍수로이 세상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노아 그리고 그의 가족만은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방주에 이제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동물들이 함께 탑니다.

방주는 이제 흘러 흘러서 알았어 안에 도달하게 되지요 그리고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여 주십니다.

무지개가 뜻하는게 무엇입니까 내가 다시는 물로 너희를 심판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 본문 바로 앞까지의 내용입니다.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새롭게 시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그래서 주일학교에서는 딱이 앞에까지만 가르칩니다.

그 다음에 내용은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노아 만취 사건이기 때문이에요

노아가 술에 취해서 벌거벗었어요 그리고 자녀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노아가 죽었더라 하고 29절에서 노아의 전체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이 나 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종종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세상에 그 죄악을 보시고 홍수를 내리셨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은 특별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

여기서 끝난 다음에 이상적일 거예요 아니 완벽할 거예요

그러나 뜬금없이 노아가 배에서 내리자 포도주를 먹고 벌거벗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아요 설상가상으로 그 둘째 아들함과 그의 자손들이 저주를 받게 된단 말이죠 아주 복잡한 사건이 벌어져요

가족 안에 어떤 비참한 일이 벌어진단 말이에요

여러분 아름답게 끝낼 수 있는 어떤 구원의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매우 지저분하고 찝찝한 사건으로이 노아의 에피소드를 종결시킵니다.왜일까요

 

솔로몬을 잘 아실 겁니다. 솔로몬은 아주 위대한 왕이죠 대표적으로 성전을 완성시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아주 확장합니다.
 나라를  안정시켜요 그의 지혜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먼 나라에서 그를 찾아오기도 하죠

그러나 그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요 아내가 많다라는 거예요

사실 하나라도 버거운데 그렇게 많이 둔다니 그죠

그래서 성경은 그의 마지막을 아쉽고 아쉽게 그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내들 때문에 우상을 섬겼더라 그의 자녀로부터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뭐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저하게 되죠 솔로몬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솔로몬을 좋은 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결국 마지막에는 실패한 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에요 그래서 실수하기 마련이죠

여러분 우리는 언젠가 다 실수할 겁니다.
 그러나 성경이 왜 꼭 그것까지 기록해야만 했을까요

저는 이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왜 성경은 굳이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춰 내고 있는 걸까요

완전한 자 탐임이었던 그 노아가 그래도 언젠가는 했을지 모르는 그 실수 그 실수를 성경은 굳이 기록을 하고 있다라는 거죠

이 앞에서 끝냈으면 좋을 걸 쉽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오늘 읽었던 본문은 왠지 모를 불편함과 찝찝함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게 있어요

오늘 본문에 우리가 불편하게 불편하고 찝찝하게 읽었던이 본문이 6장에서부터 시작된 홍수 사건의 결말이라는 결론이라는 겁니다.
 결론이라는 거예요 방주에서 내려서 무지개 짠 할렐루야 아멘하고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 사건이  노아 홍수 사건의 결론이라는 거예요

왜 그런지 지금부터 우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늦은 밤 자주 가족들과 산책을 나갑니다.
 집이 시내와 가까워요 그래서 주로 동성로에 나가게 됩니다.
 동성로에 나가면 밤에 나가면 재밌는 장면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술에 취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그 젊은이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소싯적에 그렇게 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어떤이는 그 길바닥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주 편안하게 누워 잡니다.
 신발도 가지런히 두고 잡 제가 술에 취해 보지 않아서 그게 어떤 기분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만 다만 아 취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넌 알 것 같아요

 

여러분 노아가 이제 방주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심었어요 그의 농사가 잘 됐나 봐요 그래서 그 포도나무로 포도로 포도주를 만듭니다.
 한두 잔이면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날 좀 과하게 마신 듯 합니다.
 결국 인사불성이 되지요 벌거벗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는 노아가 마셨던 포도주 그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 한글 성경에는 그것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어에는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21절에 노아가 마신 포도주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 그가 붙어 있습니다.
 영어로 치면 더가 붙어 있어요 다시 말해 그 포도주라는 거예요 그 포도주가 말하는게 뭘까요

 

오늘 노아가 처음 포도주를 마신게 아니라는 거예요

경은 인사불성 될 때까지 마셨던 포도주가 그 포도주가 노아가 항상 마셔 왔던 그 포도주라고 말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노아는 술취함에 익숙한 겁니다.
 노아는 술에 익숙합니다.
 물론 당시 문화로 살펴봤을 때 포도주를 마신다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과 술에 취하는 것 이건 다른 문제죠

고대 근동에서도 술에 취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 성경도 술 취함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을 합니까 긍정적으로 묘사하나요 아니죠

 

에베소서 5장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자이 구절은 무엇을 말합니까

술 취함을 방탕함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패역함으로 표현하고 있다고요

 

누가복음 17장 27절에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뭐 했다고요

먹고 마셨다고요 패역하고 방탕했던 그 세대의 특징이 뭐라는 거예요 먹고 마심입니다.
 다시 말해 노아가 마셨던 그 포도주입니다.
 그것을 먹고 취한 상태로 벌거벗어요 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엇을 의미할까요

 

노아가 홍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거예요

나님이 은혜로 그와 그의 가족만을 구원해 주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물에 쓸려 갔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홍수 이전의 그 패역했던 세대로 되돌아가 버린 거예요

여러분 이게 인간이에요 이게 인간이에요 그렇죠 여러분의 자녀가 잘못했을 때 부모는 매를 들어서라도 그 잘못을 고치려고 합니다.
  적어도 아이는 그때는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내가 그러지 않겠노라고 싹싹 빌려요

그러나 다 아실 거예요 그것도 잠깐이죠 잠깐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언제 우렸냐는 듯이 똑같이 잘못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한번 잡을 때 반 죽여놔야 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애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그래요 우리도 그래요 여러분 홍수에 의해서 패역한 세대들이 다 몰살을 당해요

그리고 노아와 그 가족 많은 구원을 받는다고요 그리고 방주에서 내려요 그렇게 새 인류를 하나님께서 시작하실 때 우리는 작은 희망을 걸죠 이들은 다를 거야 이들은 깨달았을 거야 이제 이들은 탄핵의 삶을 살아갈 거야 그럼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을 시작하실 수 있으실 거야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기대는  방주에선 내리자마자 산산조각이납니다.
 왜입니까 노아가 홍수 이전의 세대가 했던 일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술 취함을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럼이 장면에서 성경이 말하고 싶은게 뭡니까 뭘 말하고 싶은가요

한마디로 홍수 이전에 인간과 홍수 이후의 인간은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본질적으로 변한게 없다라는 거예요 똑같은 죄를 반복하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죠 그러다가 때로는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불순종해요 그래서 하나님한테 혼쭐나요 두들겨 맞아요 인생의 그 대홍수를 겪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순간만은 하나님 뜻대로 살기도 하고 다시는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절대 불순종하지 않겠노라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에요 몇 달 가던가요 몇 달이면 말도 안 해요 얼마 안 가서 또 똑같으실수로 우리 반복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노아가 홍수를 겪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홍수 이전에 세대들이 했던 그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다짐 안 했겠어요

그런데 그것도 잠시 뿐인 거예요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하나님 제발 구원해 주십시오

제발 나 좀 살려주십시오 하나님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저 변화된 삶 살게요

저 거룩하게 살게요 하나님 그제 절대 내 반복하지 않을게요 절별이기도합니다.
 근데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에 우리 어때요 제자리에서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는 거예요

이게 인생의 우리의 인생의 고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비극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작은 교훈을 얻을 수 있죠 인간은 소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라는 겁니다.
 인간은 소망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남편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을 여러분 아내를 한번 쳐다보십시오

이들이 소망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제 아내는 제가 남들 앞에서 뭐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아내 이야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사모에 숙명이죠 한번은 아내가  정말 기분이 나빴나 봐요 단단히 삐진 겁니다.
 저는 겨우겨우 용서를 구했습니다.
 다시는 내가 당신 이야기를 하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가족과의 모임 자리에서 남자들은 그런게 있어요 쓸데없는 개그 욕심이 있거든요 그 안에 이야기를 한 겁니다.
 아차 싶더라고요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뱉은 말을 어떻게 담겠습니까 달래느라고 며칠 고생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렇지 않습니까 실수를 반복하잖아요 반복하잖아요 어떤 큰 일을 딱 겪고 나면 그때는 큰일 날 뻔했네 정말 10년 감소였네 이제 조심해야지 생각을 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왜입니까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노아는 술에 취합니다.
  벌거벗어요 그 벌거벗은 노아를 둘째 아들함이 조롱을 합니다.
 조롱할 만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조롱할 만하죠 자식 눈에는 그 아버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처럼 보이지 않겠어요

아니 아버지이 난리를 겪고도 아직도 술에 떡이 되어 있다니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어요 근데 여러분 황당한 일이 벌어져요 술에 깨고 난 뒤 노아가 그 사실을 알고 저주를 합니다.
함과 그 자손을 저주를 합니다.
 자기 손주를 저주 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손주를 저주하는 할아버지가 어디에 있어요

그런데 노아가 자기 손주를 저주 한단 말이에요 사실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죠 이해가 되지 않아요 실제로 잘못을 누가 했습니까 노화가 했단 말이에요

인사불성이 돼 가지고 벌거벗은 건 모아예요 홍수 이전의 세대를 그대로 답습한 건  노아예요

근데 방귀 뀐 놈이 지가성을내는 거예요

노아가 저주받는게 아니라함과 그 자손들이 저주를 받아요 9장 24절 24절에 보시면요

노아가 수립되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여러분 우리는이 부분을 읽으면서 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어요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니냐는 거예요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그건 뭐라 했다고 저주를 해버리는 거예요

그것도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식 자기 손자를 말입니까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애를 말입니까

세상에 그런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버지의 술 취함과 아버지의 그 벌거벗음을 보고 다른 형제들에게 알린 것이 이렇게까지 될 정도로 잘못입니까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할 정도로  큰일이에요

여러분함이 아버지의 벗은 몸을 봤어요 쉽게 말해 아버지의 죄를 본 거예요

그리고 형제들에게 가서 구합니다.
 여기서 고함의 사용된 단어는 부끄러움을 누설하다 폭로하다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야 세상에 아버지가 어떻게 저러실 수 있어 저게 아버지야 절에도 아버지야 아버지라는 자가 저거 밖에 안 돼 뭐 이렇게 비난했다는 거예요

여러분함은 아버지의 그 잘못을 보고 비난해요 조롱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되지 않는 건 이게 저주를 받아야 할 정도로 잘못이냐는 거예요

누굴 죽인 것도 아니잖아요 주무시고 계신 아버지를 때린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이 정도의 형벌이 합당하냐 말이에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노아의 홍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심판의 심판 속에 은혜입니다.
 홍수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죽어야 했죠

노아와 그 가족도 마찬가지로 같이 쓸려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러나의 은혜를 입습니다.
 어떻게 구원받게 됩니까 착해서 구원을 받아요

헌금을 많이 내서 구원을 받아요

섬김과 봉사를 많이 해서 구원을 받아요

아니에요

 

은혜로 구원받는 거예요

다른 거 없어요 그냥 은혜로 구원을 받은 거예요

창세기 6장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래요 모든 사람의 생각이 악한 것 밖에 없대요

그런데 8절에이어서 그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나 의미가 뭐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노아도 똑같더라라는 거예요 패역한 시대가 했던 그 모습들이 똑같다라는 거예요

별반 다를게 없다는  거예요 고놈이 고놈이라는 거예요

똑같이 술 취하고 똑같이 범죄하고 살았어요

그러나 노아는 그런 아이의 은혜를 입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그를 방주로 덮어 주신 겁니다.


 여러분 은혜란 무엇입니까

무엇이 은혜입니까 덮어주는 거예요 덮어주는 거 가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샘과 야벳이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보고 덮어주는 거예요 왜요 은혜를 알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그들도요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보고 조롱할 수 있었어요

함처럼 함께 비난할 수 있었다고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러나의 은혜를 입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쉽게 말해서 오늘 본문에 샘과 야벳은 은혜를 아는 자로 등장을 하는 거예요

그럼 함은요  함은요함은 은혜를 모르는 자로 등장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방주에 오르게 되었는지 잊어버린 거예요

그저 자신이 잘나서 자신이 좋아서 뭐 잘해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착각한 겁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죄를 보고 어떻게 아는 거예요 즉시 조롱해 버리는 거예요

아버지 아직도 정신 못 차리셨어요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 제정신이세요

계속 이렇게 사실 거예요 비난하는 거예요

 

저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서두에서 노아만치 사건 오늘 이것도 우리가 본문이 무아방조 사건의 결론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노아방주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는게 무엇입니까

은혜를 아는 자는 어떠한 삶을 사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은혜를 아는 자는 어떤 삶을 삽니까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그거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반대로 은혜를 모르고 이웃을 비난하며 마치 자신이 옳고 다 맞는 것처럼 그렇게 정의롭게 정의로운 척 오른 척 착각하며 살아가는 자가 저주를 맺는 장면으로 성경이 그 노아의 방주의 이야기가 끝을 맺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둘 중 어디에서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죠

런데 여러분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고 그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들추어내고 속닥 속닥 거리고 비난하고

나는 옳고 나는 선하고 나는 정의롭다고 착각하며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가끔씩 제 어머니께서요 젊은 시절 아버지와  데이트 하다가 좀 섭섭했던 이야기들을 막 해주세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결혼 전에 자 이모를 불러서 세 분이서 노셨대요

그러다 목이 말라서 음료수를 좀 먹자 하셨어요 그 보통 어때요 그때 각자 음료수 하나씩 3개를 사야 되지 않겠어요

근데 저희 아버지께서 워낙 구두쇠세요 워낙 구두쇠 가서 음료수 하나만 딱 사서 따서 3분의 1씩 나눠 먹었대요

어머니는 그래도 직장 다니는 애인 보여준다고 동생 불렀는데 쪽팔려 죽을 뻔 하셨답니다.
 어머니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 저와 저희 누나는 누님은 막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늘해지는 건 여자는 참 무섭다는 거예요

40년이 지난 그 원한을 아직도 품고 있구나 여러분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더하고 계십니까

지난날  서로가 서툴렀던 그 모습에 실수에 아직도 으르렁거리면서 섭섭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편 32편 1절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 샘과 야벳은 허물을 덮어 줍니다.
 자격 없는 자신들이 그런 아이의 은혜를 입은 걸 알고 있는 거예요 은혜를 아는 자로 등장하는 거예요

받은 은혜를 알고 이제는 허물을 덮어주는 자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러나함은 은혜를 모르는 자 이웃을 참소하는 자로 등장을 하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선악과를 먹고 범죄합니다.
 범죄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잖아요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죄를 가려 주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던 날 밤 문설주의 피를 바랍니다.
 그리고 피를 바른 집은 사자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갑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모세라 해도 결국 죄인이에요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손을 덮고 지나가시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한 일이 뭐예요

십자가에 피로 덮어주는 거예요 우리의 죄를 가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겁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죄의 가리움을 받은 성도는 다른 일을 덮어주는 자로 살아라는 거예요

은혜를 아는 자는 용서하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여러분 아주 적절한 이야기가 있죠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탕감받은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데나리온 빚진 자가 등장을 하죠 1
만 달란트는 우리로 치면  수조원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엄청나요 한마디로 갚을 수 없는 정도의 대단한 양이에요

그런데 주인이 그걸 탕감해줘요 빛을 탕감해주는 이유가 딱 하나입니다.
 불쌍해서요 불쌍해서 잘라서도 아니고 뛰어나서도 아니고 그동안 그가 성실히 이랬기 때문도 아니에요

그저 불쌍해서 갚아 주는 거예요

그렇게 불쌍히 여김을 받고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아요

그런데 가다가 백단위를 백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요 그 멱살을 잡고 내 돈 내놔라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종이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종아 내가 빌기에 내가 내 빛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내 동료를 불쌍히 여기니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빛을 다 갚도록 그를 옥절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게 은혜를 모르는 자의 결말인 거예요

사랑하는 예절 공동체 성도 여러분 죄가 덮임 받은 성도는 용서합니다.
 타인의 죄를 가려주며 살아요 아 나는 전혀 구원받을 자격이 없구나 나 같은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허락하셨구나

그러니 나도 이제 용서해야겠다

이해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게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 삶이라는 거예요

 

반대로 목사님 저는 아직도 저 형제를 용서 못해요 저 자매가 저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들으면 목사님도 기겁하실 거예요

목사님 저는 제 상사를 용서를 못합니다.
 얼마나 저에게 모욕감을 줬는지 몰라요 제 인격을 모독하고 짓밟았는지 몰라요

아직도 손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목사님 남편에게 섭섭해 죽겠습니다. 

아내에게 섭섭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아세요

시어머니만 생각하면 제가이가 걸려요

혹시 여러분의 마음속에 아직도 앙금과 원수가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향해서 칼날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비난하고 비판하십니까

어쩌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 은혜를 모르는 자라는 증거인 겁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모른다는 증거예요 저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를 때린 고참이 있어요 대구 사람입니다.
 아 6년째 사는데 아직도 못 만났어요 언젠가 길에서 만나면 뒤통수한테 시계 걸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성도입니다. 우린 성도입니다.


 성도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자들이에요 그리고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가려 줍니다.


 문건은 물론 그 앙금이 사라질리는 없겠죠  평생 상처로 살아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제부터 내 꿈은 너야 연지나 복수를 꿈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항상 기도하셔야 되는 거예요

항상 기도하셔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저놈 좀 저 대신 한데 쥐어박아 주십시오

하나님 저 형제 자매 좀 패 주십시오

하나님 저 형제자매 사고 나게 해 주십시오

일 안 풀리게 해 주십시오 내가 저 사람보다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하나님 내가 은혜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내가 아직 미워하는 것을 보니 내가 아직 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걸 보니 남편을 미워하고 아내를 미워하고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것을 보니

아직 저는 은혜를 모르나 봅니다. 

전 아직 은혜를 모르나 봅니다.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어요

 

우리 안에 분노가 우리 안에 분노가 여전히 우리가 샘과  야벳이 아니라 함으로 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의 배우자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이 아니면 여러분의 아내가 아니면 누가 갈데 없는 여러분들을 받아줬겠습니까

그죠 그 성격 누가 받아 줬겠습니까 그네를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러니 평생 서로 고마워하면서 사는 겁니다.


 
서로 덮어주면서 사는 거예요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곳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어떤 가정입니까 샘과 야벳의 가정입니까 함의 가정입니까

여전히 우리는 함의 자리에서 있는 것 같아요

비난하고 비판하고 조롱하여 그런 하나님은 우리를 샘과 야벳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성도의 자리로 이끌어 오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늘 의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의심하지 않습니까 내가 구원받았나 내가 용서 받은 사람인가 내가 성도인가

여러분 다른 사람들에게 묻지 마십시오 그걸 누가 말해 죽겠습니까

뭘로 증명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걸로 증명이 되는 거예요

내가 구원받았다라는 거 내가 성도라는 것은 다른 일을 다른 이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으로 증명하는 거예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확증이 되는 거예요

구원받은 여러분 은혜를 아는 자로 사십시오

그게 성도가 살아갈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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