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KDOwybK9ikA
요약말은 참 중요해요 말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말 자체에 그 엄청난 힘이 가졌다라는 것을 부정하실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기타 한번 안 배워보겠냐고 문자를 하니까 그 자체에 이 친구가 울었던 거예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에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합당하게 공부를 해야 합격을 하는 거예요 운동을 해야 덜 먹어야 살이 빠지는 겁니다. 말의 힘이 있다라는 것을 어떤 미신적인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말 한마디에 새 생명이 탄생하기도 하고요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는 겁니다. 한 입술 한낱말이라는 뜻이에요 사도신경을 함께 소리내어 배움으로 우리가 다른 신앙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다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대한 일치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가지자라는 뜻입니다. 신이나 어떠한 존재로부터 우리의 인생이 통제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거 그게 문제인 거예요 우리 안에도 여러분 안에도 바벨탑이 있습니다. 언어가 나눠짐으로 인해 서로가 공감하지 못하게 된 사건인 것입니다. 주식 이야기에 들어갑니다. 바로 부동산 이야기 들어가요 집에서는 부부끼리 돈돈 얘기밖에 안 합니다. 여러분 우린 성도입니다. 근데 그 말이 모여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세우는 것이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무너뜨리는게 말입니다. 아빠 여긴 전세가 얼마야 2억 정도 해 예배의 제단을 쌓고 계십니까 은혜의 집을 짓고 계시냐고요 인간의 관심은 우리 사람들의 관심은 힘을 모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아브라함을 등장을 시켜요 모세가 굉장히 의도적인 거예요 예배에 제단을 쌓는 일이었다고요 볼품이 없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기뻐하신다고요 소위 말에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그게 뭔가 있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거죠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십니다. 세상에 볼 때는 그 인생이 무질서인 거예요 벧엘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조카와 갈라지고 난 뒤 헤브론의 재단을 쌓습니다. 이름을 바꿔주신 후에 브엘세바에 재단을 쌓습니다. 이삭을 죽일 뻔한 뒤에 모리아의 세단을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나아가야 될 길은 십자가의 삶은 결코 화려한 삶이 아닙니다. 그게 우리가 걸어가야 될 길입니다. 하나님 붙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인생 만들어 버리시는 거예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예요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음의 역설이에요 뭔가 거대한 탑을 세울 수 없게 하실 겁니다. 근데 그게 은혜입니다. |
유럽 여행을 하면서 참 부러웠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 사람들이 외국어를 참 잘하더라라는 거예요
최소 외국인들은 그 두개 국어 이상을 하더라고요 대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5개 6개 언어를 하는 겁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뭐 거의 기분으로 깔고 시작을 하지요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자유스럽게 합니다.
모든 유럽 국가가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제가 경험했던 유럽은 그랬던 것 같아요 옆집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그 할머니께서도 저보다 영어를 잘합니다. 참 부럽더라구요 저는 영계 국어거든요 한국말도 너무 어렵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여러분 모두가 최소 6년 이상 영어를 공부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분이 외국인 앞에 서면 어때요 늘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죠 네가 해봐라 네가 해봐라 하면서 뒤에 숨기 바쁩니다. 헬로 한번 하는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뭐 여러 요인이 있겠죠 그들의 언어는 어떤 유사성을 가집니다. 발음도 비슷하고 오순도 비슷합니다.
같은 알파벳을 사용을 하지요 접근성이 또 있습니다.
여러분 지도를 보시면 유럽은 어때요 자기들끼리 따닥따닥부터 있잖아요 국경을 넘을 때 여권도 검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는 언어체계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라는 겁니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살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대화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하더라고요 자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내 탓이 아니구나 조상 탓이구나 그렇게 남탓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참 편해지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한번 상상해 보겠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만약 세상의 모든 언어가 하나라면 어떨까요 모든 언어가 하나라면 어떨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했습니까 분명 장점은 있겠죠 여행을 갈 때 음식을 시키고 물건을 살 때 소통하는데 불편함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한번 다르게 생각을 해보자는 겁니다. 언어의 다양성이 주는 장점이 있다는 거예요
다양한 사고 다양한 철학 다양한 사고방식은 어디서 오는 거예요 언어의 다양성에서 오는 겁니다.
다르게 말해서 자기 언어가 없는 국가들은 그들만의 어떤 철학적인 사고 체계를 세우는게 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이 문화적으로 종속되버리거든요
영어권이 그런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 중에 영문학을 전공하신 분이 있다면 다 뭘 공부합니까
다 세익스피어 공부하지 않습니까
언어가 다르면 어때요 자문화를 스스로 발전시키고 듣고자 하는 어떤 그 힘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언어의 다양성 그게 주는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회귀라는 사고를 주입하는게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철학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전세계 한 7천여개의 외국어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이 본문은 다양한 생각을 만들어낸 그 언어가 이제 어떻게 나누어졌는가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말은 참 중요합니다.
말은 참 중요해요 말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동의하시죠 말 한마디로 천년빛을 갚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말의 힘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있는데요 천지창조입니다.
천지창조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시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죠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있었어요 물이 아니라 하니까 물이 나눠졌단 말이에요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형상인 인간은 어떨까요 돈이 생겨라 우리는 말로써 뭔가를 창조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나님과 달라요 그래도 뭔가 무에서 유를 만들 순 없어도
말 자체에 그 엄청난 힘이 가졌다라는 것을 부정하실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제가 이전 사역했던 교회에서 굉장히 수줍음이 나는 어떤 한 학생이 있었어요 옛 친구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다달을 따돌림을 당했는지 급식 시간 급식을 먹지를 못해요 그래서 화장실에서이 친구는 매일 숨어 있었어요 10시쯤 이제 하교를 하잖아요 집에 오면 엄마 밥 줘 배고파 하면서 그때 폭식을 하는 거예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부모님 가슴이 어떻겠어요 찢어지는 거죠 죽을 생각도 했답니다.
더 슬픈 건이 친구가 교회에서도 적응을 잘 못했어요 제가 부임을 하고 이제 몇 달 뒤 그런 분위기도 제가 전혀 모르고 뭐 누구가 따돌림을 당하고 뭐 이런 것도 잘 몰랐던 적응을 잘 하고 못하고 이걸 잘 몰랐던 그때 제가 이제 처음으로 시작한게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쳐줬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야 너 기타 한번 안 배워볼래 나중에 제가 그 친구의 학부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 친구가 그 문자를 받고 펑펑 울었대요 펑펑 울었대요 아무도 자기에게 지금까지 뭔가를 하자라고 말한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이전에 사역자 분도 그 친구를 포기했던 거예요 이 친구와 뭔가를 하자라고 한 번도 안 했던 거예요
그런데 새로 부위만 전도사님이 자기에게
기타 한번 안 배워보겠냐고 문자를 하니까 그 자체에 이 친구가 울었던 거예요
그래 그 친구 기타를 배워요 나중에 청소년부 찬양인도도 하게 되고요 지금은 서울에서 전도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말에이 말이라는 것에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잠언 10장 11절입니다.
은혜 입은 생명의 세미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잠언 10장 31절입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폐역한 혀는 배임을 당할 것이니라 민수기 14장 28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30장 2절입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역하였음을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말로써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잖아요 말로써 사람을 살리기도 하잖아요 또 죽이기도 해요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인간의 말 분명 하나님만큼의 능력은 아닐 거예요
하나님만큼의 능력은 아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에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동물들도 소리를냅니다.
동물들도 말을 하지요 소리를 내어서 침입자가 왔음을 알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꼭 끼워 가면서 아침이 왔음을 알리죠 그러나 그러한 소리로 소리로 사고의 체계를 세우는 건 불가능하죠 철학할 수가 없어요 그저 그것은 생존의 도구일뿐일 겁니다.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의 힘은 인간의 말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요 글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죠 울분의 찬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죠 철학하고 사유합니다.
이 모든게 언어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가정입니다.
여러분 말의 힘이 있다라는 것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신세계백화점 주차장에서 주차장에 자리가 날지어다 한다고 자리가 나지 않습니다.
시험에 합격할 지어다 한다고 시험에 합격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체중계 위에 올라가서 몸무게가 빠질 치어다 한다고 빠지지 않는다고요 기다려야 주차장이 자리가나요
합당하게 공부를 해야 합격을 하는 거예요
운동을 해야 덜 먹어야 살이 빠지는 겁니다.
말의 힘이 있다라는 것을 어떤 미신적인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너무나도 죽을만큼 괴로운 사람이 있어요 사업에도 실패를 했습니다.
인간관계에도 실패를 했어요 그 사람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오늘 죽기로 가고 했어요 그 사람에게 누가 가서 너 오늘 죽어 하면은 죽는 거예요
그런 따뜻한 위로 한마디에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돈을 준 것도 아니잖아요 그 사람에게 어떤 실제적 필요를 제공한 것도 아니에요 근데 그 말 한마디가 죽으려고 하는 그 사람을 일으키는 겁니다.
우리 세대면 히데이터룩스 신창원을 아실 겁니다.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그 계기를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창원아 돈 안 갖고 왔는데 뭐하러 학교와 꺼져 그 한마디에 자기 마음속에 악마가 태어났노라 악마가 태어났다 이렇게 그가 얘기를 해요
말 한마디에 새 생명이 탄생하기도 하고요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는 겁니다.
자 노아에서 노아가 방주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 우리가 읽었던 1절에서는 아직 언어가 노아가 방주 내렸습니다.
아직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일자리에 이렇게 말합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1절에 말이 하나 언어가 하나라는 말이 있는데요이 표현을 직역하면
한 입술 한낱말이라는 뜻이에요
한 입술 한낱말이란 뜻이에요 단순히 언어가 통일되어 있다라는 걸 말하지 않아요 한낱말이라는 단어는요 다발을 하는 단어인데요이 단어는 행동이 포함된 단어예요 즉 언어가 같음을 넘어서 그들이 외치고 있는 어떤 구호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 그들의 생각이 동일했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다시 말해 그 사람들이 같은 생각에 공감하고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라는 걸 뜻에 뜻해요
여러분 우리가 에젤예배에서는 하지 않지만 1 2 3부 예배를 드리면 예배를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으로 예배를 처음 시작합니까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하잖아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신경을 함께 소리내어 배움으로 우리가 다른 신앙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다
라는 것을 확인하고 예배에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가 다른 옷을 입고 있죠 다른 차를 타고 교회 와요 다른 집에 살아요 사는 것도 다르고 사회적 신분도 분명히 달라요 그러나 한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사도신경을 외우는 시간이에요 그래야 함께 예배를 드릴 거 아니에요 여러분 부처님 믿는 사람하고 함께 어떻게 같이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사도신경을 외우고 예배를 드리는 거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시위 현장에 가보셨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외치잖아요 맨 앞에서 누군가가 외칩니다.
어쩌고저쩌고 하면 뒤에 사람이 따라서 외칩니다.
어쩌고저쩌고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우리 생각이 똑같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같다라는 것을 표현합니다.
즉 오늘 우리가 방금 읽었던 1절 언어의 통일을 넘어서 그들의 생각이 일치했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게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일치냐라는 거예요 어떤 생각에 대한 일치냐라는 거예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대한 일치입니다.
3절에서 4절입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경고의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자 여기에 흥미로운 표현이 나오죠 서로 말하되 자 또 말하되 자 무슨 의미입니까 당시 사람들이 한 언어 같은 말을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사용을 했다라는 겁니다.
사전에 보시면 중요한 표현이 나와요 우리 이름을 내자라는 말이 나와요 우리 이름을 내자이 표현을 직역을 하면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가지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아주 자주 나오는 중요한 고대의 개념이 있는데요
이름을 준 사람은 이름을 받은 사람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름을 받은 사람은 이름을 준 사람의이 주인이다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아담에게 온 땅을 다스리라 하나님이 그 다스리라라고 명하시잖아요
그래서 아담이 하는게 뭐예요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잖아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네가 이제는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라 하리라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하리라이 모든게 뭐냐면 단순히 그 사람에게 새 이름을 주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다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장면인 거예요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가지자는 무슨 뜻이 될까요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개척하자라는 거예요
신이나 어떠한 존재로부터 우리의 인생이 통제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지배받지 않겠다는 거예요
스스로가 그 인생의 주권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걸 뜻하는 거예요
신이 우리를 더 이상 벌하지 못하도록 신이 우리를 심판하지 못하도록 우리 스스로가 살 길을 이제 찾아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탑 쌓는 거예요
여러분 모이는게 모이는게 문제가 아니에요 서로가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는게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통치가 문제예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거 그게 문제인 거예요
여러분 바벨탑은요 오늘날 중동에도 남아있는 지구라트입니다.
지구라트는 네모난 모양인데요 한 변이 한 100m 정도 됩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것은 91m 정도 된다고 해요 노아의 후손들이 노아의 후손들은 아마도 아마도 홍수에 대한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을 거예요
언제라도 신이 자신들을 심판할 것이다라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겠죠 하나님은 분명 무지개를 보여 주십니다.
무지개를 보여주심으로 다시는 너희를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후손들은 그 말씀을 믿지를 못해요 믿지를 못하고 우리 힘으로 스스로 그 심판을 벗어나고자 탑을 쌓는 거예요
아마도 먹구름이 막 몰려오면 덜덜 떨어질 거예요
가랑비라도 막 내리면 덜덜 떨어질 거예요
신이 분노해서 우리를 또 심판하면 어떡하지 신이 우리를 또 치면 어떡하지 그래서 탑을 쌓자는 거예요
탑을 쌓아서 신이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게 아니라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이 되자라는 겁니다.
우리 안에도 여러분 안에도 바벨탑이 있습니다.
내 안에 바벨탑이 있다는 건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안 도와주셔도 하나님이 나에게 설령 고난과 시련을 주신다고 해도 내 힘으로 내피할 길을 마련해 두겠다 그러니까 우리가 더더더 모으는 거 아니겠어요 더더더 쌓고자 하는 거 아니겠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주셨어요 말을 주시고 그 말로 생각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서로 공감하게 하셨어요 그러나 그들은 그 말로 무얼 함대 사용을 합니까 힘을 모아서 거대 도시를 건설하는 겁니다.
심판을 피하고자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흩어지게 하시잖아요 언어를 나누고 찢어지게 하시잖아요 창세기 11장 7절입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자 언어가 혼잡해져요 언어가 혼잡해지자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서로가 공감할 수가 없게 돼요 언어가 혼잡해지니까 서로가 더 이상 공감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마음을 모을 수가 없게 된 거예요
즉 바벨탑의 사건은 단순히 언어가 나눠졌다 가 아니라
언어가 나눠짐으로 인해 서로가 공감하지 못하게 된 사건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많은 애화를 나누시길 바래요 마음을 하나로 모으시길 바랍니다.
근데 중요한 건 그 마음을 나누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목적이 뭐냐라는 거죠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그 주제가 뭐냐 그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높은 탑을 쌓는데만 대화를 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더 살지 더 잘 살지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지 어떻게 하면 돈 더 많이 벌 수 있을지 그런 대화들만 나누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들 더 좋은 학교에 보내고 또 좋은 고혹 환경에서 더 좋은 대학에 보낼지 그런 생각에 혹시 여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대화만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런 대화도 필요합니다.
하지 말라는게 아니에요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그러나 적당히 하셔야 됩니다.
어느 순간 선을 넘어 버리는 거예요
어느 순간 하나님 없어도 되는 인생 하나님 계시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 돼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눈을 말씀을 드립니다.
언어가 하나인 거 바람직합니다.
뭐 사람이 모이는게 나쁜 일이에요 좋은 일이에요 서로 공감하는 거 좋은 일입니다.
생각을 공유하셔야 돼요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셔야 돼요 뭔가를 한다라는 거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아주 권할 일이에요 문제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건가 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서 소그룹으로 모이면이 짧은 예배를 마치자 말자 바로 이제
주식 이야기에 들어갑니다. 바로 부동산 이야기 들어가요 집에서는 부부끼리 돈돈 얘기밖에 안 합니다.
그런 이야기의 공감을 해요 그렇다 다 맞다 여러분 세상 공동체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냥 장소만 교회인 거죠 부르는 이름만 집사님이고 권사님인 거예요 형제고 자매인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모임과 뭐가 차이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린 성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는 이야기를 하셔야 돼요 성도는 가정을 세우는 대화를 나누셔야 돼요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가 어떤 은혜를 경험했는가 그거를 나누는게 성도 간의 대화인 거예요
여러분 서로 말하되 자 우리가 형제자매의 흉을 보자 또 말하되 자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지 떵떵거리며 살고 수 있을지 한번 이야기해보자 그러면 되겠습니까 여러분 3인 성호라는 말이 있죠 세 명이 있으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에요 말의 힘이 있다라는 거예요
근데 그 말이 모여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겁니다.
우리가 읽었던 창세기 11장이 본문의 1차적 독자는 누구입니까 이제 막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그 모여서 하는 말이 뭐였어요 내내 불평한 거예요
민수기 14장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민수기 14장 4절입니다.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들이 모여서 한 일이 뭐예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예요
바벨탑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말이고요 그리고 바디탑은 흩어지게 한 것도 말입니다.
호세아서 6장 3절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말이 서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어요 말로 예배의 제단을 쌓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세우는 것이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무너뜨리는게 말입니다.
저는 단순히 말할래 어떤 말투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물론 말투도 중요하죠 야 너 오늘 정말 말띠껍게 한다 처럼 오늘 한판 붙자는 시기에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가정에서 나누는 말투도 중요한데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주제입니다.
주제 부부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어떤 주제를 주로 이야기하는가 그거를 한번 살펴보시라라는 거예요
얼마 전 몇 년 전 저희 가정이 이제 전세계약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사를 할 것인가 재계약을 할 것인가 아내와 상의를 했습니다.
문제는 저였어요 애들을 재우고 이야기를 나눠야 되잖아요 근데 제가 밥 먹고 이야기하고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또 이야기하고 수시로 아내와 집 이야기를 했거든요 저는 가장이라서 그 마음에 부담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조심했어야 했죠 근데 조급한 마음에 제가 수시로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근데 오늘 차를 타고 이동을 하고 있는 중에 첫째가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아빠 여긴 전세가 얼마야 2억 정도 해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떤 이야기의 공감하세요 여러분들 가정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계세요
예배의 제단을 쌓고 계십니까 은혜의 집을 짓고 계시냐고요
아니면 우리 이름을 낼 바벨탑을 쌓자 세상에 규칙과 세상의 방법을 쫓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계십니까
여러분 말로 가정을 세워야 됩니다. 말이 여러분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오늘부터 여러분의 가정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어떤 것에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고 대화의 주제가 뭔지 그것을 좀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게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사건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관심은 우리 사람들의 관심은 힘을 모으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흩어짐을 면하는데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몇천 명 돌파 몇 만 명이 구독했다 물건을 샀다
이렇게 홍보하지 않습니까 우리 힘이 얼마나 큰가 그것 보여주는게 사람들의 관건이죠
그래서 넓은 평야에 탑을 쌓는 거예요
흩어지지 말자는 거죠 모이자는 거예요
모여서 하늘까지 쐈잖아요 하늘까지 닿게 하지 않았는 거예요
근데 죄송합니다만
하나님은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오늘 보면 11장에 보시면 사람들이 모여서 탑 쌓는 이야기를 해요
성경은 탑산된 이야기 그 말미 29절에
아브라함을 등장을 시켜요 모세가 굉장히 의도적인 거예요
의도적인 거예요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이제 11장부터 11장 끝나고 12장부터 이야기를 이어나갈 아브라함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과 정반대의 인물임을 강조하는 거예요
마지막에 살짝 등장하는이 아브라함이 바벨탑을 쌓았던 그 사람들과 완전 반대의 일을 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한 일이 무엇이었어요 제단을 쌓는 일이었어요
예배에 제단을 쌓는 일이었다고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뭐 하는 사람인가요 하나님의 백성은 높은 탑 쌓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곳곳에 예배에 제단을 쌓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제단은요 작은 단위예요 바벨탑과 비교해봐요 얼마나 자꾸 볼품이 없습니까 초라한 단위에요 쉽게 말에 한 1m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돌탑 이거든요 게다가 그 돌탑을 쌓을 때 그 돌을 깎으면 안 돼요 뭐 모양을 새기거나 꾸미면 안 돼요 그러니 어떻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땐 우리는 예배의 제단이라고 쌓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냥 돌무더기인 거예요
여러분 바벨탑 같은 높은 탑을 쌓으려면 얼마나 고난이도의 그런 기술이 필요하겠습니까
고도의 기술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겠죠 도를 네모 반듯하게 탁 탁 이렇게 만들어야 탑을 높이 쌓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제단은요 그냥 돌로 쌓은 거예요
볼품이 없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기뻐하신다고요
여러분 바벨탑은 아름답고 치밀해 보여요 웅장하여 단 말이에요
그런데 바벨탑의 뜻이 뭐냐면요 바벨이란 뜻은 웅성웅성 대다 혼자 파다 혼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즉 성경은 그 웅장하고 화려한 그 실체가 뭐라는 거예요 무질서라는 거예요 혼돈 덩어리라는 거예요
소위 말에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그게 뭔가 있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거죠
사랑하는 예제 공동체 여러분 세상은 자신의 탑을 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보이는 탑을 쌓아요 높이 높이 쌓아요 학벌을 쌓고 물질을 쌓습니다.
왜요 흩어지지 않아야 되거든요 위대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실체가 뭐라는 거예요 무질서인 거예요
무질서 여러분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아브라함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쉽게 말해 그의 삶은 떠돌이 인생이었어요 평생 살던 곳을 떠나야 했잖아요 살 곳이 좁아서 조카와 나눠져요 나눠져야 됐어요 게다가 양보까지 해줘야 됐어요 자식이 없어 계속 고생하지 않습니까 하갈을 드리기도 하죠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요 들어가자마자 기근이 찾아와요 그래서 애굽에 내려가요 애굽에 내려갔더니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아내를 빼앗길 뻔해요 세상이 볼 때는 세상이 바라볼 때는 그 인생이 어때요 혼돈인 거예요
세상에 볼 때는 그 인생이 무질서인 거예요
흥미로운 건 아브라함은 그 무지에서 속에서 그 혼돈의 그 복잡해 보이는 인생 속에서 제단을 쌓아요 고향에서 떠나 세겜에 들어가서 재단을 쌓습니다.
벧엘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조카와 갈라지고 난 뒤 헤브론의 재단을 쌓습니다.
이름을 바꿔주신 후에 브엘세바에 재단을 쌓습니다.
이삭을 죽일 뻔한 뒤에 모리아의 세단을 제단을 쌓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브라함의 삶은 그 혼돈과 그 무질서를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더라는 거예요
그거는 가는 곳곳에 제단을 쌓게 돼요 그걸 뭐라고 불러요 우리는 십자가에 삶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나아가야 될 길은 십자가의 삶은 결코 화려한 삶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을 하죠 하나님 믿는 사람이 왜 저것밖에 안 돼 아니 왜 맨날 실패하고 맨날 뭐 안 되는 거야 아 저 사람은 뭐 인생이 뭐냐 고난이 많아 그들이 볼 때는 우리의 인생이 무질서죠 혼돈이잖아요 질이 멸렬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무엇이 은혜입니까 하나님이 고난 주심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우리의 인생을 복잡하게 해 주심이 은혜입니다.
예배에 제단을 쌓게 하시거든요 기도하게 하시거든요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순종을 끄집어 내시거든요 그게 아브라함의 삶입니다.
그게 우리가 걸어가야 될 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집사님이 계세요 한때 굉장히 잘 나가셨어요 근데 IMF 때 무너지셨어요 그리고 이제 공사 연장을 다니시다가 반쪽이 마비가 되셨어요 지금은 이제 또 회복하셨어요 그분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런 삶 가운데서도 한 번도 원망을 안 하셨어요 한 번 더 하나님 앞에 나가시고 썩 엎드리는 거예요
욕할 만도 한데 하나님 진짜 섭섭합니다.
하나님 앞에 뭔가 항변할 만도 한데 변함없이 예배드리시더라구요 지금도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회복했다 이것도 없어요 지금도 어려워요 그런데 세상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시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저도 이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로또 당첨되면 절반은 헌금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저떻고 저도 좋고 윈윈 아닙니까 여러분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다 주셔 보십시오 물질 명예 권력 다 주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그때 겸손히 하나님 섬기시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못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못해요 기고만장해질 거예요
내가 뭐 좀 되는가 보다 생각할 겁니다.
탑 쌓기 시작할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꽝 저기서 꽝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난리가 나고 인생 계획이 뒤틀리는 거예요
왜요 기도하게 하시는 겁니다.
제단을 쌓게 하시는 거예요
순종케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붙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인생 만들어 버리시는 거예요
여러분 성도는 성도의 삶은 그 일생 동안에 뭔가 업적을기를 만한 높은 탑을 쌓고 가는게 아니에요 대단한 탑 쌓고 이제 천국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 절대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게 성도의 인생입니다.
화려하고 높고 견고하지만 한 커플만 탁 벗겨내면 혼돈인 바벨탑의 인생을 사는게 아니라 흔들리고 지지리 공상이고 막고 초라하지만 그리고 두들겨 맞으세요 두들겨 맞으세요 피를 흘리세요 내 틈을 당하세요 근데 그게 영광이래요 그리고 내가 성전이다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피 뚝뚝 흘리면서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힘과 권력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분에 대한 순종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여러분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가 계십니까 그리고 형제자매가 있습니까 하나님은요 지금의 여러분의 삶 가운데 제단 쌓기 원하시는 거예요
세상이 볼 때는 그거밖에 안 돼 무슨 능력이 하나님이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네 인생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조롱할 겁니다.
하나님 명심하십시오 아이러니 하지만 성경은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는 거예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으로 탑을 쌓고 심판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흩으시죠 아브라함은 일이 엎어지고 저리 엎어지고 결코 평탄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지만 곳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을 쌓게 돼요 그리고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자 열국의 아비가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바벨탑을 쌓는 곳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가정은 예배에 제단을 쌓는 곳입니다.
그래서 중요한게 뭐라고요 말이라고요 무엇을 나누고 있는가 우리의 가정이 무엇에 공감하고 있는가 그것 꼭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흩으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기꺼이 흩어지는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은 결국 믿음의 조상이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음의 역설이에요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주도권을 스스로 가지려고 합니다.
자기만의 그 바벨탑을 쌓으려고 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죄송하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두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하나님이 절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거예요
뭔가 거대한 탑을 세울 수 없게 하실 겁니다. 근데 그게 은혜입니다.
대신 제단을 쌓게 하십니다. 예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의존적 존재로 만드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 나라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의 주도권을 내어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벨탑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순종의 자리에서 시작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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