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그늘(3) 그늘 탐욕
자본주의 보다 현실을 반영한 체제는 없다
하지만, 치명적인 위험 탐욕이 있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맞춰 적절한 가격이 정해진다.
사회주의는 인간이 도덕적이고 선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선하고 도덕적이지 않다.
사회주의 체제는 잘못된 신념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심을 인정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작동했다.
욕망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 욕망의 힘때문에 발전한다고까지 말한다.
성경은 소유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한다.
십계명, 도둑질 하지 말라는 근거는 나의 소유와 상대방의 소유가 구별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성경은 욕망을 문제삼지 않는다. 만족할줄 모르는 욕심이 문제이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만족할줄 모른느 욕심은 죄로 이어지고, 죄로 인해 사망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사회: 욕심은 죄가 인다.
성경: 욕심을 방치하면 죄가되고, 사망을 가져온다.
1. 탐욕의 특징
예수님의 상황 누가복음 12:13
유산의 배분에 대한 부탁, 당시 랍비들의 중재 내용
주님은 유산 배분에 관심이 없으셨다. 그 문제와 분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기 원하셨다.
누가복음12:15
예수님은 유산에 대한 분쟁이 왜 일어나는지 아셨다.
문제의 핵심, 원인을 지적한 예수님은 탐심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알려주기 위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탐욕은 만족할줄 모르는 욕망이다. 눅12:16~17
(1) 만족할줄 모르는 욕망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줄 모르는 마음
탐욕은 항상 ‘조금 더’를 외친다. 충분하다고 말할줄 모르는 것이다.
탐욕이 어떤것인지 식탐을 통해 알수 있다.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찾고, 배가 불러도 먹게 된다.
벤저민 프랭클린(300년전 사람)
인간은 요리법이 향상된 두 몸이 요구하는 것의 두배를 먹는다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만족은 소유가 아니라 훈련에서 오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절대로 중립적이지 않다.
가만히 있으면 다른사람, 주변의 친구를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나에게 없는 것을 보면서 불평하게 되는 것이다.
탐욕은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이다.
내가 가진것에 감사할줄 아는 것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이 이 편지를 로마 감옥에서 썼다. 바울은 그 상황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가진것이 많지 않지만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임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만족하는 것을 배운 사람만이 인생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만족할줄 모르는 욕망, 탐욕에 빠지는 사람
(2) 나눌 줄 모르는 인색함
눅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곡식이 너무 많아 쌓아둘곳이 없다면, 이럴때 인심을 좀 쓸것이다.
선한 마음으로 나누지 못한다면, 투자하는 마음으로 베풀수도 있다.
부자는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 가지려고 했다.
자기것을 조금도 나누지 않는 인색함
탐욕의 뒷편에는 인색함이 있다.
왜 이렇게 인색한 사람이 되었을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은혜가 무엇인지 살면서 경험하지 못했다.
은혜는 자격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받은 사랑이다.
세상에서는 이 은혜를 경험하기는 어렵다. 조건없이 사랑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은혜를 받아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베풀수가 있는가?
조건없이 주는 사랑을 받아봐야 줄수가 있다.
인간다움과 소유중 무엇이 중요한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목표가 될때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
물질의 종이 되면 우리의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
(3) 미래에 대한 두려움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돈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 눅 12:20
왜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라고 말씀하셨을까?
어리석음 = 자기 미래를 스스로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
약 4:13~14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모은 돈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내 미래를 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다는 것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
2. 관대함으로 가는 길
(1) 내 손에 있다고 모두 내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것의 주인은 하나님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 주인의 뜻에 맡게 사용하는 것 뿐이다.
눅 12: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맡긴 것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맡게 사용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의 오만
내 곳간, 내 곡식, 내 물건, 내 영혼
모든 것이 다 내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다.
이유는 주인되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으면 우리는 물질을 섬시게 되어 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면 안된다라고 말하지 않고, 동시에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돈의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한다.
돈에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함
(2) 베푼 것만 남는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었느냐에 있다.
죽음 이후에도 기억되는 것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다. 십자가에 달리사 살과 피와 목숨까지도 우리를 위해 주셨다.
소유가 없어지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시간이 없어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우리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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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스템입니다.
각자가 노력한 대로 거기에 맞는 경제적 이윤을 갖는 자유주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역사는 짧게 보면 250년이고 길게 보면 500년 정도 됩니다.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 가운데서 여러 차례 수정되기도 했습니다.
자본가가 모든 것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세워졌고 우리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안도 세워졌습니다.
현대사회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자본주의보다 더 현실을 잘 반영한 체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목사의자 신학자로서 저는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위험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탐욕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국보론이란 책에서 보이지 않는 소원이라는 개념을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가격을 정할 때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선이 작동해서 적정한 가격이 정해진다 하는 이론입니다.
그렇다면이 보이지 않는 선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손이 아닙니다.
바로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작동을 해서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적정한 가격이 정해진다는 이론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 기반해서 세워진 체제입니다.
그에 비해서 사회주의는 인간이 도덕적이고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 같이 열심히 일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똑같이 나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도덕적이거나 선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봤는데 더 열심히 일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는 그러므로 잘못된 신념과 인간관에 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는 작동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인정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더 많이 갖고 싶은 그 욕망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욕망의 힘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한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은이 욕구 자체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역시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성경 어디에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구절이 있나요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십계명을 말씀하면 됩니다.
십계명에 보면 도둑질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에 근거에는 나의 소유와 상대방의 소유가 구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 있으면 나에게 쓸만큼 있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 되는데 아무리 많이 있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 그 욕심은 문제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멘 만족할 줄 모르는이 욕심은 죄로 이어지게 되고요 죄로 인해서 사망이 우리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욕심과이 탐욕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욕심을 죄라고 부르지 않지만 성경은이 욕심을 아주 심각한 문제로 여깁니다.
왜냐하면이 욕심을 방치하면 이것이 죄가 되고 그 죄는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어마어마한 그 추수를 거둔 부자가 아이 곡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기존의 곳간을 허물고 큰 새로운 곳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그 공모를 다 보관하고 말하기를 아 이제 오랫동안 먹을 음식이 있으니까는 이제는 쉬고 즐기고 편히 먹고 마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데려가셨습니다.
그러면 그 남은 그 제사는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조금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는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셨을까요 이 비유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상황에서이 말씀을 하셨는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유산을 나누는 문제에 대해서 부탁을 했습니다.
이제 당시 유대 랍비는 율법에 관한 논쟁이 있을 때 그것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형과 유산을 나누는 문제는 율법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랍비들이 많이 이제 중재했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유산을 나누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대신에 주님은 그런 문제와 분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기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탐욕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삶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아멘 예수님은 유산에 대한 분쟁이 왜 일어나는지 아셨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그 탐심으로 말미암아서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의 핵심 문제의 그 원인을 지적하신 예수님은이 탐심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려주기 원해졌습니다.
그래서이를 위해서 주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에 보면 탐욕에 대한 세 가지 특징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탐욕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함에 심중의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을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한 부자가 아주 풍성한 추수를 거두었습니다.
추수한 곡식이 얼마나 많았는지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여러분 진짜 부자는 자기 통장에 잔고가 얼마인지 몰라야 한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이번달 수입이 얼마이고 아 그래서 진통장에 잔고가 얼마 있다 하는 것을 다 압니다.
하지만 부자는 안 그래도 돈이 많은데 매일 같이 돈이 들어오니까 통장에 잔고가 얼마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이 부자는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곡식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에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누지 않고 자기가 혼자서 다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어떻게 해야지이 곡식을 다 보관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의 본질입니다.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이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은 항상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 이제 충분하다라고 말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식탐인입니다.
식탐 혹시 여러분은 주변에 식탐이 많은 친구가 있으신가요 음식을 탐하고 더 많이 먹으려는 그런 분은 보면 어떠한 기분이 드십니까 우리가 비만 관리를 위해서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면요 가장 먼저 하는 말이이 말이라고 합니다.
배부르면 그만 드세요 초등학생도 다 아는 얘기죠이 말을 지키는 것이 쉽나요 어렵나요 어렵습니다.
왜 어렵나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하면 음식의 퀄리티가 너무 올라갔습니다.
예전에는 맛집을 가려면 멀리 가야 했는데 이제는 집 가까이에도 맛집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음식 중독이라는이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알코올 중독 뭐 니코틴 중독이 있는 것처럼 음식에도 우리가 중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배고프지 않아도 계속해서 음식을 찾게 되고 배가 부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요리법이 향상된 뒤 몸이 요구하는 것에 두 배를 먹는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벤자민 프랭클린이요 300년 전 사람입니다.
300년 전에도 우리가 필요한 곳에 두 배를 먹었다면 지금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우리가 음식을 먹고 있을까요 배부를 때까지 먹었으면 우리가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족은 무언가를 많이 가졌을 때에 그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족은 소유가 아니라 훈련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만족은 우리가 가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을 인정하는 훈련에서 오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절대로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이 세상을 따라가게 되고 주변에 친구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아 저 사람은 있는데 왜 나에게는 이것이 없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내가 가진 것으로 감사하기 보다는 나에게 없는 것을 보면서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인데요 그 이유는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요 우리가 자녀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이이 편지를 썼던 것이 로마 감옥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갇힌 상황이 있지만 바울은 그 상황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족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만족하는 사람 수도 있습니다.
만족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상관없이 아 이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인정하는 것이 만족인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만족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인생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즉 탐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의 두 번째 특징은 나눌 줄 모르는 인색함입니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너무나도 아까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태도였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8절 함께 읽겠습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아멘 부자는 풍성한 추수를 거두었고 싸울 곳이 없을 정도로 곡식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곡식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내가 쌓아둘 것이 없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럴 때 인심을 좀 쓸 것입니다.
아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좀 나눠주고 내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좀 나누어 줄 것입니다.
충분히 먹고도 남을만큼 있으니까 이럴 때 좀 인심을 베푸는 것이지요 혹시 선한 마음으로 나누지 못한다면 투자하는 마음으로라도 나눌 수 있습니다.
재물이 넉넉할 때 이걸 좀 잘 사용해서 좋은 관계를 맺어두면 혹시 나중에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이 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먹고도 남을 곡식이 있었지만 그것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를 모른 체했습니다.
자기 주변에 분명히 어려운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 다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허물고 더 큰 곳간을 세웠습니다.
더 큰 곳간 안에 곡물을 다 저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의 두 번째 모습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것을 조금도 나누지 않는 인색함입니다.
탐욕의 뒷면에는 인색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인색한 사람을 만나 보셨습니까 돈에 있어서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사람 조금도 나누지 않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도 그런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정말 돈의 인색한 친구를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그 사람이 절대로 가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있어서 너무나도 인색했습니다.
친구인 저에게 인색 한번은 상관없는데 자기 가족에게도 인색하고 심지어 자기 부모님에게도 인색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아 왜 이렇게 인색한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하던 중에 제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이런 그 모든 것은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이 친구는요 은혜가 무엇인지 삶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자격 없는 사람에게 값 없이 주어진 사랑이 은혜입니다.
아 나는 이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 때 값없이 그 사랑을 베풀 때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이 세상에서는이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정말로 어렵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나 계속 계산적이고 너무나 차갑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이를 악물고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은혜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베풀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 조건 없이 그냥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 없이 주는 그 은혜를 받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있을 때 나누지 않는이 인색함이 얼마나 사회를 각박하게 만드는지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 가난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도 엘리트가 있고요 아프리카에도 부자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그 부자 동네에 가면 특징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담이 4m 5m 이렇게도 오픈 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요 고압선 철조망이 있습니다.
그 담장 앞에는 무장한 사설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제 마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아 가난한 사람들과 분리되어서 최고급 성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 다음이 무엇일까 제가 깊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나의이 소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인간다움을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케빈도 이형은 인간 다음과 소유에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온전히 인간다운 삶은 소유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이다 우리 삶은 소유와 그에 대한 욕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의 소유는 우리의 필요와 인간성에 도움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인간 다음과 소유이 둘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인간 다음에 중요하죠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소유합니다.
하지만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목표가 될 때에는 어쩌면 우리의 인간 다음은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소유를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내 소유를 절대로 나누어 주지 않기 위해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하는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의 종이 되는게 이렇게 무서운 일입니다.
물질의 종이 되면 우리의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돈을 최고로 여기는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이 부분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여기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추수를 거둔이 부자는요 그 많은 곡식을 혼자서 가지려고 했고 그 결과 그의 인간다움을 포기한 것입니다.
탐욕이 세 번째 특징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내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그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는 원래 있던 곳과는 허물고 더 큰 국가는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 가득 넘치도록 곡식을 다 채웠습니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 9절 함께 읽겠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원히 여럿을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아멘 여러분이 부자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아 새로 만든이 큰 곳간 안에 곡식이 가득 있으니까 아 이제는 좀 편안하게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은퇴 후에 필요한 자금에 대한 계산이 나왔습니다.
국민연금 연구원에 따르면 은퇴 이후에 필요한 월생활비가 약 267만원이라고 합니다.
부부를 기준으로 말입니다.
은퇴 후에 30년 동안 산다고 가정했을 때 필요한 생활비는 약 9억 6천만원이 됩니다.
은퇴하는 시점에서 9억 6천만원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편안한 마음으로 은퇴를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생각할 것입니다.
혹시 큰 병이라도 걸리면 병원비가 많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자녀가 집을 산다고 하면 그것도 도와줘야 되니까 돈이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최대한 돈을 많이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돈을 많이 모으려고 합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돈에 집착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하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우리가 돈을 사랑하고 돈을 의지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나중에 문제가 있을 때를 대비해서 돈을 최대한 많이 모으려고 합니다.
물론 노후를 대비하는 것 우리의 책임이고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그 재물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신 그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더 복된 줄로 믿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려고 많은 곡식을 쌓아둔 부자를 향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아멘 하나님은 왜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는 자기 미래를 자기 스스로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내 인생을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커녕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미래에 대해서 말합니다.
내가이 일도 할 거고이 일도 할 거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멘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도 같은 인생입니다.
제가 예전에 전도서 설교를 할 때 헛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해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해배야 이런 단어가 기본적인 의미로 입김 수증기 바라함을 뜻합니다.
잠시 동안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의 해별이 신약에서 가장 분명하게 사용된 구절이 바로이 야고보서 4장 말씀입니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여기서 안개가 히브리어 헤벨입니다.
안개와 같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주님께서 붙잡아주지 않으시면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모은 돈을 의지하고 내가 모아놓은 곡식을 의지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미래를 내 스스로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역시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 영혼을 찾으리니 그러면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일평생 돈에 집착해서 돈을 위해서만 살다가 가면 그 남은 돈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절반은 국가에서 세금으로 가져갑니다.
나머지 절반 자녀에게 가서 조금 더 편안하게 살겠죠 하지만 그 돈을 버느라고 신앙생활에 소홀하고 가족에게 소홀했다면 과연 그것이 지혜로운 인생이겠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내 미래를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커녕 당장 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를 붙잡고 계신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지혜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이 탐욕의 문제를 이길 수 있을까요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내 손에 있다고 해서 모두 다 내 것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소유를 잠시 맡은 청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맡은 그 청지기가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정직이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서 주인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직후에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청지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아멘이 말씀은 청지기의 역할에 대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지기의 역할은 주인의 소유를 잠시 동안 맡아서 주인의 뜻에 맞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주인이 맡긴 것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게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부자는 이와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많은 곡식을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누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는 청지기 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탐욕으로 가득한이 부자가 오만하게 말합니다.
내 곳간 내 곡식 내 물건 내 영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본문 안에 나라는 헬라어 단어가 무려 8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손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곳간도 내 것이고 곡식도 내 것이고 물건도 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었습니다.
왜 악할까요 주인 되신 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맡기신 그것을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으면요 우리는 그 물질을 주인으로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탐욕을 우상숭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3장 5절 말씀 보니까 탐심은 우상숭배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제물을 동시에 섬기면 안 된다가 아니라 동시에 섬길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든 제물을 섬기던이 둘 중에 하나만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돈과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요 우리가 돈의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돈 위에 있고 우리가 돈을 지배해야 합니다.
돈이 우리를 지배하고 돈이 우리를 조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돈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돈을 사용하면 됩니다.
이 주인이 내가 아니라이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이 돈을 사용하면 됩니다.
물론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돈을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헌금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헌금할 때마다 우리는 돈을 향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의 종이 아니다.
나는 너를 다스리는 돈의 주인이고 내가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다라고 고백하는 행동이 바로 헌금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우리가 돈을 사용할 때 우리는 돈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내 손에 있다고 다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것을 잠시 동안 맡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탐욕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했던 설교 제목 중에 베푼 것만 남는다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었는지에 달려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이 설교를 한 이후에 장례식에 가서 장래 인도를 여러 차례 인도했습니다.
장례예배를 고인께서 어떠한 분이셨고 그분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들을 때마다 제가 다시 한번마다 깨달았습니다.
아 죽음 이후에도 기억되는 것은 얼마나 출세했고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가 아니구나 고인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고인이 얼마나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셨는지 그것이 기억되는구나 고인이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셨고 얼마나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셨는지 아 그 사랑이 기억되는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인생을 기억할 때 그가 쌓아 올린 부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가 평생 동안 나누고 베푼 사랑을 기억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베푼 것만 남는다고 했을 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을 베풀었던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그 무한한 부를 혼자서 움켜쥐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서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여하신 이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분이 마땅히 누리셔야 하는 그 모든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사 그분의 살과 피와 목숨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고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그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내 소유가 다 없어지는 것과 내 시간이 다 없어지는 것이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올까요 내 소유가 먼저 다 없어질까요 아니면 내 시간이 먼저 다 없어질까요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 시간이 먼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소유가 없어지는 것은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왜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내 시간이 모두 다 사라진 이후에 심판주를 만나는 것은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마저도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소유를 위해서 걱정하지 마시고요 시간을 위해서 걱정하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우리의 인생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하라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않고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우리 인생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돌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붙잡고 계신 그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