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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노트

2023-03-05 (주일)ㅣ대구동신교회 주일설교ㅣ내 마음의 그늘 (1) 교만ㅣ베드로전서 5장 5-7절ㅣ문대원 목사

by kwangs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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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ZxFm4Bk3xkE 

 

내 마음의 그늘(1) 교만

개인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공의롭지 못한 이유는 죄 때문

죄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자기가 한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와의 관계가 깨어졌는데, 법을 어겨 처분을 받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을 탓해야 소용이 없다.

반드시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그 책임을 물을 날이 온다.

초기 기독교시대 부터 7가지 죄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

성경은 교만을 가장 큰 죄로 여긴다.

살인보다 교만을 큰 죄로 여긴다.

교만은 죄인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려고 하기 때문에 가장 파괴적인 죄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교만에 비하면 다른 죄들은 벼룩에 물린 자국과 같다 (CS루이스)

교만이 왜 이렇게 심각한 죄인가?

1. 교만의 특징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교만이 왜 가장심각한 죄인지 알게 하는 말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하나님과 적이 되어 싸우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교만해지는 것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빠른 길

교만이 심각한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

죽음 이후에 천국에 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은혜가 필요한데

교만한 사람에게 원인이 있다. 하나님이 아무리 은혜를 주고 싶어도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줄수가 없다.

교만은 무엇이며 특징은 무엇인가?

(1) 높아지고자 하는 갈망

실제의 내 모습보다 더 높이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의 공통점: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허풍을 떤다.

높아지고자 하는 강력한 갈망을 가졌던 존재는 사탄

천사의 자리에 만족할수 없어 감히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고자 했다.

이사야 14:13~14

교만의 본질, 나의 자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처럼 높아지려는 욕망이 바로 죄의 시작이었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쉬운일

2~3세 아이가 자의식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하는 말은 “싫어”

우리는 한번도 불순종하라고 가르친적이 없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이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것 외에 설명할수가 없다.

(2) 자기 중심성

교만한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내가 중심에 서길 원하고 주목받기 원한다.

  • 하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의 핵심은 교만이었다.

교만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자기 중심성

나르스시즘, 타인의 우월의식이 있고, 거맣나 태도로 나만 위해서 살아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류역사상 가장 나르스시즘이 강력한 시대

자기중심성은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잘 보여준다.

왜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을까?

누구든 처음부터 갖춰놓고 시작했나? 라고 생각하지만, 복잡한 문제이다.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부모들의 결혼생활을 보며 내린 결론일수도 있다.

청년들이 결혼에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이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청년중에 결혼을 안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연애를 안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내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 내커리어, 내 자유, 금전적인 여유, 내가누리는 것은 다 누리면서 연애만 하고 싶지 결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만 행복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도 양보하거나 희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가족에게, 자녀에게도 희생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나만 행복하겠다는 마음, 환상이다.

이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만 행복하도록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행복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공동체의 분열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존중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딤전 6:4

교만한 사람은 우월의식에 빠져있다.

상대방을 무시하면, 감정싸움이 시작된다

한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다. 두세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나쁘다는 말이 있다.

사탄은 수많은 교회를 같은 방법으로 무너뜨렸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면 그 공동체는 분열한다.

우리 모두는 제한된 관점, 제한된 능력을 갖고 있다.

그 길은 하나뿐,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

눈이 코에게 너는 필요없다. 하찮은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

한몸을 이룰때 크고 놀라운 일을 할수 있다.

교만의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2. 겸손으로 가는길

(1)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고 말씀하신다.

출애굽 사건

애굽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라고 하면 구원의 역사를 뜻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기억하고, 그 구원의 은혜안에서 겸손하라는 뜻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세상 모든 종교는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전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밖에 없는 한가지 사실,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만

이 선물을 받고 나서 자기를 자랑할 수 없다.

선물을 받고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 선물을 주신분께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을 인정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바라보는 것이 겸손의 시작이다.

진정한 겸손은 우리의 행복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겸손이다. (존파이어)

나의 이 기쁨과 행복은 하나님께만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겸손의 시작이다.

(2) 권위에 순종하며 겸손을 배우라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겸손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것

우리에게는 순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데 이것이 교만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순종함으로써 겸손을 배운다.

‘나는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경건한 권위에 순종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그 순종을 통해 온전함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예수님처럼 닮아가기 위해 반드시 순종을 배워야 한다.

순종을 잘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권면에 기쁨으로 순종하여, 귀하게 공헌하기를 축언합니다.

(3) 통제광

겸손에 대해 강조하다가 갑자기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

마치 축구 경기에서 내가 잘나서 골을 넣었다고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겸손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는 것,

그래서 내가 가진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지만, 교만한 살마은 모든 것을 통제하기 원한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내가 다 안고 살아간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높아지고자 하는 그 갈망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인생의 많은 스트레스는 없을 것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염려를 주님께 맡길 수 있다.

어떠한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나?

너무 많은 마음과 염려로 힘들어 한다면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맡겨야 한다.

겸손의 길로 임할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림

 

 

 

 우리 마음 안에는 여러가지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죄라고 부릅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공의롭지 못한 이유도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다른 사람이 해코지 해서 불행한 경우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경우는 자기가 한 그 잘못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 탓을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녀가 어렸을 때 자녀에게 함부로 대해서 자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깨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다른 사람을 탓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쉽게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법을 어겼다가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내가 지은 죄 내가 지은 잘못은 절대 어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서 반드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이 1년 후가 됐던 10년 후가 됐던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날이 오게 됩니다.

 모든 죄가 다 나쁜 죄이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특별하게 심각하게 여기는 죄의 목록이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7가지 죄를 치명적인 죄로 여겼습니다.

 거기에는 교만과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이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이 중에 4가지 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죄에 대해서 설교한다고 하니까 왠지 기대감이 혹시 적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이 4가지 죄와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더욱이 3월 달은 죄에 대해서 생각하기에 좋은 달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우리가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는 부활절을 준비하는 그 40일 동안의 특별하게 지켰습니다.

이 기간에 특별하게 기도를 하기도 하고 금식을 하며 경건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활절을 준비하는이 기간에 우리 마음 가운데 어떠한 죄악이 있는지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더욱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다 이렇게 아름답게 차려입고 와서 멀쩡해 보이지만 우리 마음 안에는 다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과거의 죄로부터 온 것도 있고 타락한이 세상에 영향으로 온 것도 있고요 아니면 지금도 반복해서 짓고 있는 죄악 때문에 온 것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는 그늘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어떻게든 안보이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로 다루고 싶은 죄는 교만입니다.

 성경은 교만을 가장 큰 죄로 여깁니다.

 살인이 가장 큰 죄가 아니라 교만이 가장 큰 죄라고 하니까 조금 놀라울 수도 있겠습니다.

 악마는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습니다.

 첫 인간도 교만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죄가 죄인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지만 교만은 죄인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려고 하기 때문에 가장 파괴적인 죄인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선 마음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기독교 사상과 CS 루이스는 교만의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만에 비하면 다른 죄들은 벼룩에 물린 자국과 같다고 말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 교만에 비한다면 다른 죄는 아주 하찮게 보일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만이 왜 이렇게 심각한 죄악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잘 보여주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베드로전서 5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아멘 교만이 왜 가장 심각한 죄인지 이것보다 더 잘 보여주는 말씀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적이 되어서 싸우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미국의 적이 되어서 미국과 싸운다면 그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일 것입니다.

 하물며 온 우주의 창조자 되신 그 하나님과 적이 되어서 싸우는 것은요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있습니다.

 바로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교만이 심각한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얼마나 은혜가 필요할 때가 많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죽음 이후에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이 땅에서 살 때에도 하나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생 의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은혜가 없으면 우리가 버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주고 싶어도 하나님을 등지고 선 사람에게는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고 싶은데 아이가 입을 꼭 닫고 있으면 그 음식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교만은 무엇이며 그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교만은 높아지고자 하는 갈망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높이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높이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의 내 모습보다도 나를 더 높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과장하고 과시하고 허풍을 떠는 것입니다.

 돈 자랑을 하기도 하고 자식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골프를 치는 경우에는 몇 타를 치는지 과장해서 자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려면 내가 평균적으로 몇 타를 치는지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평균 실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잘 친 경우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니스도 마찬가지죠 우연히 어느 날 멋진 스매싱을 했습니다.

 근데 이것이 평소 실력이 아니라 어쩌다가 우연히 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이 운이 아니라 내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높이 생각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실제 내 모습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보면 높아지고자 하는 강력한 갈망을 가졌던 존재가 나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원래 사탄은 하늘의 천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천사의 자리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가고자 했습니다.

 이사야 14 13 14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내 마음의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에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그룹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좌파 지리라 하는도다 아멘 이것이 바로 교만의 본질입니다.

 나의 자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똑같아지고 싶은 그 갈망이 바로 교만입니다.

 사탄은이 교만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고 똑같은이 교만으로 인간을 유혹했습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그 논리가 똑같습니다.

 하나님 말씀 듣지 말고 하나님 말씀 순종하지 말고 너 자신이 하나님이 돼서 너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유혹했습니다.

 창세기 3 4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아멘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 이런 말씀이 무슨 신화처럼들을 수 있습니다.

 무슨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인간이 벌을 받고 죄인이 되는 거 말도 안 된다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이 말씀은 나무 열매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하는 그 욕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죄의 시작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태어나서 말을 배웠던 그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살 세 살 된 아이가 죄를 지어봤자 얼마나 지었겠습니까 그런데이 아이가 자의식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싫어입니다.

 엄마가 이제 씻자 한 아이가 싫어하죠 엄마가 이제 밤이 됐으니까 자자 하면 아이가 싫어합니다.

 저희 아이만 그랬나요 여러분 아이들은네 어머니 알겠습니다.

 그랬나요 아니죠 우리는 한 번도 불순종해라라고 아이에게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아이에게 엄마 말씀 잘 들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우리 아이는 그렇게 배운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그 행동을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타락해서 죄인이 되었다는 설명 외에는 다른 길로는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동기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갈망 교만한 마음이 바로 죄의 시작이었습니다.

 교만의 두 번째 특징은 자기중심성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세상의 중심에 자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든지간에 내가 중심의 서기를 원하고 항상 내가 주목받기를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 친구분 중에 그런 분 계십니까 사진이 단체 사진을 찍으면 항상 가운데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옆에 설 수도 있고 뒤에 설 수도 있는데 항상 나는 가운데서야 하는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있지요 내가 세상에 중심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리브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인간이 저지른 범죄의 핵심이 교만이고 그것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야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핵심은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는 피조물이었는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런지도 하나님 말씀 안 듣고 내가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내 운명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 교만의 결과 나타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기중심성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요 자기중심성의 가장 대표적인 결과가 나르시스짐입니다.

 나는 아주 특별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은 다 하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이 나한테 있고 거만한 태도로 나만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사회는 인류 역사상 나르세스님이 가장 강력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가족도 생각하지 않고 나 혼자만 행복하면 된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성은 교만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인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요즘 이제 청년들이 결혼을 잘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상세대들을 생각하기를 왜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을까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누구는 처음부터 다 갖춰놓고 시작했나 다 신혼 때는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의이 결혼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입니다.

 청년들이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각자의 가정에서 보아왔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관계를 보고 그들이 내린 결론일 수 있습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는 평생 저렇게 고생만 하시고 살았는데 나는 저렇게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과연이 생각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잠시 후에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청년들이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기성세대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에 청년들이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이 문제에 대해서 청년 탓만 하지 마시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아내와의 대화 중에서 결혼 문제가 어쩌면 자기중심성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청년들 중에서 결혼을 안 하겠다는 청년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애를 안 하겠다는 청년은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연애를 하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다 사랑을 하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결혼은 안 하겠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왜 연애는 하고 싶은데 결혼을 안 하고 싶을까요 간단합니다.

 내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일 내 커리어 내 자유 내가 누리는이 금전적인 여유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리는 것 다 누리면서 연애만 하고 싶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만 행복하고 싶은 그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거나 희생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심지어 내 자녀에게도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하고 내가 포기할 바에는 그냥 결혼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만 행복하고 싶은이 마음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은 나를 쓰시즘의 극치이고 현대 사회가 가진 환상입니다.

 제가 왜 환상이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이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만 행복한 것 자기 중심적으로 사랑하는 것은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만 행복하도록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행복을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을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기중심성 나르시즘 청년들의 결혼 문제는 다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만 사랑하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행복하기 원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교만의 특징은 공동체의 분열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존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의견이 타인의 의견보다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답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교만이 있으면 투기와 분쟁 다툼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디모데전서 6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아멘 교만한 사람은 5월 의식에 빠져 있습니다.

 우월 의식이 있으면 상대방을 무시하게 되는데 그때 공동체는 분열됩니다.

 우리가 회의하면서 토론할 수도 있고 뭐 논쟁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을 무시하면 그때 이제 감정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감정 싸움이 시작되면 그 회의에서는 절대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공동체는 분열됩니다.

 이것은 사탄이 너무나도 자주 사용해왔던 방법입니다.

 인류 역사상 사탄이 얼마나 많은 교회를 이러한 방법으로 무너뜨렸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죠 한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다라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한번 속을 수는 있어도 두 번 세 번 열 번 성능은 안 되는 일입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그렇게 속고 속고 또 속으면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면 그 공동체는 분열되게 되어 있습니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면 그 공동체도 분열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저도 절대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제한된 관점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에는 당회라는 아주 훌륭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와 당우회가 서로 협력하고 서로 보완하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 갑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께서 얼마나 귀한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시고 섬기시는지 모릅니다.

 권성수 목사님께서 은퇴하신 이후에 7개월 동안 우리 교회 공식적으로 담임목사가 부재한 상황이었는데 아마도 많은 교인들은 그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들께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앞으로도이 아름다운 유산과 전통이 계속해서 우리 교회에 흘러가기를 축원합니다.

 그 길은 하나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눈이 코에게 아 너는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손이 발을 향해서 아휴 너는 하찮은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연약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때 한 몸을 이룰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할 줄로 믿습니다.

 교만의 특징이 이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교만을 이길 수 있을까요이 교만의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교만의 반대인 겸손의 길로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겸손으로 행할 수 있는지 오늘 본문에서 3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이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멘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요 혹시 영어 성경을 읽어 보셨거나 영어 찬양을 많이 들어보셨던 분들은 생각나는 어떤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읽어보면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신명기 6 2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내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아멘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라고 할 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애굽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뜻합니다.

 애굽에서 우리가 종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뜻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권능에서 아래에서 겸손하라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기억하고 그 구원의 은혜 안에서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가 한 일이 사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100%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구원받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슬람에서는 구원받기 원하면 일평생 5가지 그 계명을 지키라고 가르칩니다.

 불교에서는 구원받기 원하면 고행을 해서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무언가를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도덕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으로 고통받았듯이 우리는이 죄악의 종으로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아 이게 죄인 줄 알고 좀 안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죄의 종으로서 그 죄야의 굴레 안에 아빠가 되 살아갔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이고 100%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이 선물을 받고 나서 자기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너무나 큰 선물 너무나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그 선물을 받고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 선물을 주신 분을 자랑합니다.

 그 선물을 주신 분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는 것이 마땅한 줄로 믿습니다.

 겸손의 시작은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죄의 종으로 고통받던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바라보는 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존 파이프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진정한 겸손은 아 우리의 행복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겸손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아 나 같은 사람 아무런 자격 없는 사람을 주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다 아 그러므로 나의이 기쁨과 행복은 하나님께만 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겸손의 시작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권능의 손 아래에서 겸손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겸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 5절 말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아멘 겸손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권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데 순종하는 것이 타락한 우리에게는 가장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는 일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청개구리 본능이 있어서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반대로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춘기 사전 중에서 딱 마음먹고 공부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공부해라 하면은 청개구리 본능이 발동해서 그때부터 공부를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순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교만의 결과입니다.

 교만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가정의 세우신 그 경건한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우리가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가끔 나는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물론 그 말씀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이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경건한 그 권위의 순종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리더에게 순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리더에게는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4 33절에 보니까 우리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셨고 경건한 그 질서 안에 권위 안에 우리가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순종을 통해서 우리가 온전함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 8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아들이심에서도 받으시는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아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심으로써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임한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닮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종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영성이 깊은 사람 정말로 성숙한 사람은 순종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가지고 다른 사람 섬기기 위해서 순종하는 사람이야말로 영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분께 여러 가지 권면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제자훈련 하는데 함께 하시지요 아 이번에 교사가 필요한데 순장이 필요한데 함께 섬기면 좋겠습니다.

 물론 도저히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면 그러한 권면에 순종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그런 권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서 그러한 겉면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권면이 올 때 기쁨으로 순종하여서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공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겸손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아멘 오늘 본문은 겸손에 대해서 계속해서 강조하다가 갑자기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는 것과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요 교만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힘과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내 힘으로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교만입니다.

 이것은 마치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고서 내가 잘해서 내가 잘 뛰어나서 골을 넣었다고 자기를 자랑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비해서 겸손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 겸손한 사람은 자기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내가 가진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기지만 교만한 사람은 내가 모든 것을 다 통제하기 원합니다.

 그 결과 교만한 사람은요 세상 모든 고민과 염려 걱정을 다 안고 살아갑니다.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가 다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간에 4차 로잔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전국 거점 교회에 담임목사님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각 교단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국 25개의 거점 교회 담임목사님들의 모여서 로잔 대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구에서는 우리 교회와 순복음 대구교회가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전국적인 모임에 가서 제가 저를 소개를 하겠지요 동신교회 새로운 목사이고 권성순 목사님의 후임입니다.

라고 저를 소개하면 그곳에서 목사님들께서 저를 측은하게 바라보십니다.

 아 권성수 목사님 제 훌륭한 목사님의 후임이 되었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얼마나 부담이 많으십니까라고 저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제가 아무리 잘해도 권 목사님께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을지 그분들께서 대신 걱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저는 아주 담담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맞습니다.

 권 목사님처럼 훌륭한 목사님의 후임이 되는 것을 참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정말로 큰 특권이고 영광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나 권 목사님의 후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 목사님의 후임이어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목사님과 함께 신앙생활했던 우리 성도님들은 기본적으로 목회자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섬기면 자연스럽게 그 목사님의 사랑과 신뢰가 흘러오는 것을 제가 느끼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반대로 이와 반대로 전입 목사님께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경우에는 후임 목사가 와서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받습니다.

 아주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데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분들은 과거의 목사님을 향한 신뢰가 한번 깨어졌기 때문에 그 깨어진 신뢰가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권 목사님의 후임이라는 것이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사하고 아주 특권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사역을 섬기는데 있어서 저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기고 있습니다.

 저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저의 어떠한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컨트롤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어떤 목회적인 사역적인 욕심 야망 이런 것도 거의 없습니다.

 로잔 대회 뭐 총무로 섬기는 것 저의 욕심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만하라고 하시면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그 일에 순종하기를 원할뿐입니다.

 우리가 높아지고자 하는 그 갈망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인생의 많은 스트레스가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일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든 것을 다 통제하고 컨트롤해야 한다는 그런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저를 돌보시고 우리 교회를 돌보시는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그 고민과 염려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혹시 너무 많은 고민과 염려로 힘들어하고 있다면이 시간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다 맡기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교만의 길에는 높아지고자 하는 갈망 자기중심성 공동체의 분열이 있습니다.

 나만 앞세우고 나만 행복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과도 같습니다.

 겸손의 길로 행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권위에 순종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나의 힘과 나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주권과 능력을 신뢰할 때 겸손의 길로 행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잠언 18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마음에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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