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9 (주일)ㅣ대구동신교회 주일설교ㅣ우리가 있어야 할 곳ㅣ에베소서 2장 19-22절ㅣ문대원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PEA2dTzO8Sw
인생을 살아가며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외로움은 주변에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고 뭐 친구가 많은 사람도 충분히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혼자 가는 돌아가는 중에 갑자기 외로움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그런 실존적인 외로움이 우리를 찾아올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외로움이 지속되게 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 상태가 훨씬 더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 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외로움과 고독은 점점 더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2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가 700만 가구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 증가 속도가 매우 빨라서 2017년에는 1인 가구가 561만 가구였다면 2021년에는 716만 가구가 1인 가구입니다
1인 가구에 40%는 2-30대 젊은이들이지만 급격한 노령화로 인해서 혼자 사는 노인들도 무려 18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대한가정의학회지에 따르면 1인 가구는 다인 가구에 비해서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결과 고혈압 당뇨 대사증후군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서 우울증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그 비율도 더 높다고 합니다
이 모든 자료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족 공동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때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 말씀합니다 동물과 식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보시기에 좋았는데 사람이 혼자 있는 그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 가정을 만드시고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혼자서 살지 않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배려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공동체의 소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여러가지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그 유대인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야 우리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있고 할례가 있어라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도 아니었고 율법과 할례도 받지 못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당시 이방인들은 아싸였습니다
여러분 아싸라는 표현을 아시나요 야싸는 뭐 기분 좋을 때 하는게 아니라 아웃사이더의 줄임말입니다 이너서클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 주변부에서 맴도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우리가 아웃사이더라고 하는데 줄여서 아싸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그 이방인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전반부는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2장 후반부는 그 십자가의 은혜가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 벽을 허물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셔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맡긴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아멘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다른 인종 다른 문화 다른 언어의 벽을 허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독특한 특징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모든 세계 종교는 그 종교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힌두교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은 인도 남자입니다 이슬람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은 아랍 사람입니다 무슬림이 기도하는 모습은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란 없습니다
여러분 누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모습일까요 백인 남성이 기독교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국 여성이 기독교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크리시쳔이 기도하는 모습은 나라별로 교단별로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부르짖어 크게 기도합니다
무슬림은 아랍어로 기도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전 세계 모든 언어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아멘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선포합니다 이제 너희는 외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과거의 그들은 왜인이요 나그네였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했고 유업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어떤 법적인 권리도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갔던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친구가 중학교 시절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하는 집이 자기 집이 아니라 보니까 엄청 눈치를 보면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냉장고 안에 있는 그 우유를 한번 먹고 싶어도 자기 마음대로 냉장고를 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홈스테이 비용을 내도이 집은 남의 집이고 나는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의 과거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바깥에 있던 외인이자 나그네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서 그들 역시 구원을 받았고 그 결과 그들의 신분이 변화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자녀에게는 당당함이 있습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남의 집에서 홈스테이 하는 학생은 냉장고를 열 때마다 눈치를 봅니다 하지만 자녀는 자기 집 냉장고를 열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냉장고 안에 있는 그 음식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먹으려고 했던 그 음식을 자녀가 먹었다고 해서 화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물론 가끔씩 화날 수도 있겠지만요 근데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그래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가족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아멘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가족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족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가족 관계는 끊을 수 없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아 너 이제부터 내 아들 아니야라고 해도 그 관계가 사실 끊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호적에서 판에도 가족관에 그 관계는 끊어질 수 없습니다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시고 가족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끊어질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너 이제부터 내 아들 아니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되면 여러 가지 특권과 유익을 누리게 되는데 제 생각에 가족으로서들을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 있다면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유명한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백악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 책상 아래에서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세계 최강 대국 대통령 집무실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일반인은 당연히 들어갈 수 없고 장관이나 보좌관들도 미리 약속을 해야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아들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미리 약속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 때나 가서 대통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자녀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자녀가 가진 가장 큰 특권은 언제든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딸이 저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어렵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아주 편안하게 요구합니다 그와 동일한 권세와 당당함이 우리에게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 우주적이고 전 세계적인 그 글로벌 패밀리고 우리는 그 패밀리에 일원이 된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가족이 된 우리 성도의 정체성을 말하면서 건물의 비율을 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개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개개입을 개개인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시는 그 큰 성전에 일부로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되셨느니라 아멘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역할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사도라는 그 단어 자체가 보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보냄받은 자는요 자신의 메시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예전에 한국과 미국에서 신사도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어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을 가리켜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도가 있다 그 사도에게는 특별한 영적인 권위가 있고 특별한 지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사도 자체는 아주 특별한 어떤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나 뭐 어떤 도마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도들 역시 우리가 똑같은 연약 함이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사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이 사도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그렇고 사도 바울도 그렇고 절대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목회자들입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정말로 신실한 하나님의 종인지 아닌지 우리가 분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자기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지 확인해 보면 됩니다
그분의 설교를 하신 이후에 목사님이 드러나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높임을 받고 드러나는지 우리가 확인해 보면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는데 그 모퉁이돌은 예수님이 되십니다
이 모퉁이돌을 영어로 하면 코너스톤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키스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너스톤은 건물을 지탱하는 돌이고요 키이스터는 아치형 구조를 지탱하는 도를 가리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아치형 구조에서 정가운데 빨간색 글씨로 되어 있는 것이 키스톤인데이 키스톤이 전체 구조를 붙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키스톤이 빠지면 전체 구조가 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교회 전체를 붙드시는 핵심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빠지면 교회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영적인 구조를 붙들고 계신 분은 예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키스톤이 아치형 구조를 붙든 것처럼 예수님께서 교회 전체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절대로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 규모를 자랑하고 우리 교회 성도를 자랑하고 우리 교회 예산을 자랑하는 것 정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 자랑하고 우리 교회 여러 가지 프로그램 자랑하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교회에 기초가 되시고 교회의 반석이 되시고 교회의 키스톤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세상에 조직과는 다릅니다 교회는 관료화 되고 제도화된 어떤 그런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유기체입니다 유기체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생명력이 있고요 활력이 있고 유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머리도 신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는 방향으로 언제든지 기쁘게 움직이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두 번째로 모퉁이돌 대신 예수님께서 안에서 성도 개개인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1절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며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아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전체 함께 연결되어서 함께 하나님의 성전이 되 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는 각 파트 각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누군가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 마음 안에 가슴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아 내가 잘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큰 뜻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 안에 감격이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야구장에 가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팀을 응원할 때 우리 마음 가운데 감동이 있습니다
월드컵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다 같이 한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응원할 때 우리 마음 안에 감격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크고 나보다 더 중요한 그룹 안에 소속되고 싶은 그 욕구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는 것은요 성도가 개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연결되어서 무언가 크고 놀라운 것으로 함께 이루어 가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여러분 성전이 무엇입니까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그 하나님을 우리가 어느 한 장소 안에 가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친히 증거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성전에 임재하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특정한 건물이 성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모임이 바로 성전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우리를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아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 각 사람이 우리가 연결되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레고를 조립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자녀와 함께 레고를 만들어 본 적이 있으실텐데 예전에는 레고가 비교적 심플하게 나왔다면 요즘에는 정말로 크고 아주 정교한 레고 세트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가장 조립하기에 어려운 레고가 무엇인가 봤는데 한 다섯 개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에펠탑 레고였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는게 레고인데요 엄청나게 정교하게 나왔습니다
크기도 커서 무려 높이가 150cm나 됩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레고 에펠탑 레고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레고를 만들려면요 총 만개의 그 조각을 맞춰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도 놀라지 않으시죠 자녀와 함께 레고를 만들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500조각짜리 그 세트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500조각도 추진했는데 만 개의 조각을 맞추는 것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설명서를 따라서 하나하나씩 조각을 빠짐없이 잘 맞추어야지 우리가 이것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교회 안에서 각자가 담당한 자기의 자리가 있습니다
모든 조각의 제자리가 있는 것처럼 모든 성도를 역시 자기의 자리가 있습니다
에이 나 같은 사람 없어도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 한 사람 두 사람이 빠진 자리는요 전체 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대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개의 레고 조각 중에서 그 하나를 보면요 그 하나가 아주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만개 중에 한 개 두 개 없어도 큰 상관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교한 작품을 원래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조각이 다 필요합니다 어쩌면 우리 개개인은요 그 만개의 조각 중에 하나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룰 수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 인생 이렇게 자꾸 연약한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내 인생은 자꾸 유한하기 때문에 나 자체로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 내가 속한 그 큰 글이 많아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조각에는 제자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성도에게는 제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각자 맡은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연결되어져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어 갈 줄로 믿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눈에 잘 띄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요 또 어떤 사람은 눈에 잘 안 보이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방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의 그 수고는 사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사랑과 섬김이 없으면 교회 사역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 몸이기 때문에 영광도 함께 받고 고통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교회가 한 일은 곧 내가 한 일입니다 교회가 칭찬을 받으면 곧 내가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속한 그 공동체 안에서 그 큰 그림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모퉁이돌 대신 그 예수님 안에서 연결된 성전일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각 사람을 연결해서 그거 놀라운 성전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요 어떤 특정한 교리를 믿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컬렉션이 된다는 것은 그 믿음과 더불어서 특정한 공동체의 소속되는 것까지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분의 몸된 교회에 속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있어야 할 곳이 있는데 바로 그것은 교회입니다 정신건강의사의자 크리스찬 상담가인 커트 톰슨이란 분은 자기의 나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우리 뇌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깊은 공감과 이해를 나누는 관계가 있을 때 우리의 정신 건강이 큰 유익을 얻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영혼의 해부학이란 책이 있는데 이렇게 그는 설명했습니다
사람은 더 깊은 차원에서 알려져야 하는 존재이다 알려지는 것은 상대방과의 친밀성과 신뢰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고립된 사람이란 없음을 그리고 삶이란 다른 사람에게 특히 하나님께 연관되고 알려지며 이해되는만큼 기쁨과 용기와 친절과 안전으로 채워짐을 이해할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공감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놓고 1시간 2시간 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아 그 시간을 통해서 내가 이해해봤고 공감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해와 공감일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퇴근했을 때 오늘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이해하는 이유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어땠는지 이해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간혹가다 남편은 시시콜콜한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이해와 공감 없이 우리가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꽃다발도 아니고 선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관심의 집중입니다 100%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언제든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의식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1위입니다 OECD 평균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11명인데 한국은 23명입니다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만약에 단 한 명이라도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 외로움과 답답함이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 이해해 주는 것은요 사실 가정이 감당해야 할 제일 중요한 역할입니다 가정에서 우리가 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가족을 용납해 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지치고 상했을 때 그것을 위로 받을 그 가정이 없다면 그 어디에 가서도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영적인 가족인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교회의 공동체 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일 같이 교회에 모였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 오는 것도 힘든 일일 텐데 왜 초대학교의 성도들은 매일 같이 교회에 모였을까요 그들에게 무슨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뭐였을 때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였을 때 이해와 공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핍박을 받고 환란을 받지만 교회 안에 진정한 위로와 평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단어가 있다면 바로 서로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알렐론이라고 하는데요 신약성경에 보면 서로라는 단어가 50번 이상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교제하고 서로 섬기고 서로 가르치고 서로 용납하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그 공동체가 바로 초대교회였습니다
한 사람은 약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될 때에는 강력한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전도서 4장 9절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남은 그들이 수고하므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입니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물을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아멘
사탄은 우리가 교회에서 멀어지고 마음이 떠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은 사탄의 유혹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고립된 사람들은 넘어졌을 때 그들을 붙잡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습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배워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요 다른 의미로 사랑을 배워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면 우리는 추상적인 어떤 개념을 생각하는 것 철학적인 개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나를 사랑해 주셨던 부모님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 내 자녀를 떠올립니다 사랑은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교실과도 같습니다
교회에 보면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지만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그 법을 우리가 교회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나가서 불신자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 이상적인 사람을 만나야지 사랑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이상적인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상적인 사람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을 사랑하면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완벽한 교회를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완벽한 교회를 그 찾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우리가 완벽한 교회를 사랑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교회를 사랑함으로써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판단하실 때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이루었는가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를 가지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씀을 정말로 진리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장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멘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사랑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100년을 살아도 자신만을 위해서 산 사람을 누 가 그리워하겠습니까 수백억 수천억을 벌어도 자신만을 위해서 살다간 사람을 누가 기억하겠습니까 여러분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 중에서 여러분이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해 준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은 변하지 않고 사랑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원대한 꿈과 목표가 있습니다
한번뿐인 인생 정말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고 아무도 이루지 못한 그 일을 한번 이루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닙니다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전심으로 사랑했는가 내가 내 가족과 내 이웃을 전심으로 사랑했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마더 테루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만큼 사랑을 쏟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했는지를 가지고 우리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행하고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그 공동체 바로 교회 안에 거할 때에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바로 교회의 소속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가는 줄로 믿습니다
모든 벽돌에게 제자리가 있듯이 모든 성도에게는 제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고 사랑과 섬김을 배워갈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많이 있지만 서로 기도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붙들고 계신이 교회를 통해서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고 하나가 되어서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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